등록 : 2010.04.19 19:30
수정 : 2010.04.19 19:30
|
여현호 논설위원
|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텔레비전 생중계 연설에서 눈물을 흘렸다. 군 통수권자로서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눈가에 물기가 번지더니 종내에는 손수건까지 꺼냈다. 함께 눈시울을 붉힌 이도 있을 것이다. 그가 감정의 격동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게 처음은 아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6월에도, 청와대 뒷산에서 시민들의 <아침이슬>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눈물을 흘렸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당시 그는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지금의 이 대통령도 어려운 처지다. 무겁기 그지없는 대통령의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그가 이제껏 겪지 못한 실질적 안보상황이긴 하다. 대통령의 판단과 선택, 말 한마디에 나라 전체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구든 대통령 자리에 있는 이라면 고민과 고뇌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대통령에겐 어려운 문제가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현재 군이 맡고 있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책임자도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민간 전문 인사가 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장 교체 지시다. 그런데도 단장은 바뀌지 않았다. 어느 순간 대통령의 말이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더니, 결국 닷새 뒤인 11일 민군 공동조사단장으로 발표됐다. 청와대 참모진 사이에선 군이 지난달 31일 군 장성을 단장으로 한 민군 조사단을 서둘러 출범시킨 것도 조사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고 최소한 합동단장 체제로 가려는 계산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어찌됐건 대통령의 말이 군에 그대로 통하지 않는 형국임은 분명하다.
그것 말고도 갈등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청와대 쪽은 천안함 침몰 뒤 한 점 의혹 없이 모두 공개하라는 대통령 지시에도 군 당국이 보안과 낡은 절차만 앞세워 경직되고 미숙한 대응을 하는 바람에 의혹과 비판만 양산하고 있다고 답답해한다. 곧, 청와대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얘기다. 외국 전문가들의 조사단 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사고 얼마 뒤부터 이를 추진했다지만, 군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이 대통령이 “국제적인 전문가들이 단순히 보조 역할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도 이렇다. 청와대의 힘이 무소불위였다는 옛날과는 다른 양상이다.
무엇보다 보수세력이 그런 군을 두둔하면서 자신에겐 불만을 공공연히 드러낸다는 점이 이 대통령에겐 큰 부담일 것이다. 보수 성향의 많은 이들은 이미 북한의 공격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이 대통령이 초기에 단호한 대북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비난, 직접 응징에 나서야 한다는 선동, 군의 사기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대통령이 군의 존립을 부정한다며 국방장관의 항의 사퇴 등 ‘항명’을 부추기는 극우 인사까지 있다. 대통령이 지지기반의 그런 기류에 휘둘리게 되면 지금보다 더한 보수우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어제 추모의 ‘눈물’과 함께, “우리 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는 말을 했다. 군의 ‘강한 정신력’도 강조했다. 이번 사건이 외부 공격 때문이라면 초계와 작전에 실패한 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군의 구멍 난 지휘·보고 체계, 군 기강의 해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십수년 전 하나회 해체로 가까스로 탈정치화를 이룬 군이 지금 그 능력을 의심받고 국민의 불신까지 받고 있는 것은 폐쇄적인 군 문화를 채 벗지 못한 탓일 것이다. 이 대통령이 그런 개혁과 혁신을 지향하는지, 실제 그럴 힘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어려운 처지에서 쉬운 길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