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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22 21:08 수정 : 2010.04.22 21:08

정남기 논설위원





열흘 전 현직 교장 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학교 건물 하나 지으면 60%가 남습니다. 그 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머리가 갑자기 띵해졌다. “그렇게나 많이?”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100억원짜리 공사를 하면 건설업자에게 60억원이 떨어지고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이 리베이트로 교육계에 다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교육감을 하려고 하는지 모든 궁금증이 쉽게 풀렸다. 몇 가지 얘기를 더 했다. 그중 하나가 교장의 자릿값이다. 교장 승진에 3000만원, 원하는 자리로 옮기는 데 5000만원이 기본이라고 한다. 모든 권한이 몰려 있어 어떻게든 교장 한번 해보려 하고, 그 대가로 돈이 오간다는 것이다.

3~4일 뒤 여주군수 사건이 터졌다. 군수가 재선을 위해 국회의원에게 현찰 2억원을 뭉칫돈으로 넘겼다가 경찰에 구속됐다. 21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해남군수 집에서는 현금 다발만 1억9000만원이 나왔다. 4년 전 지방선거 때도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 김덕룡 전 한나라당 의원의 부인이 서초구청장 출마자에게 4억4000만원을, 조재환 옛 민주당 사무총장이 최락도 전 의원한테서 4억원을 공천 대가로 받았다가 들통이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차이가 있다면 5만원권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참 질긴 생명력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권력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오가는 돈다발 속에 싹트는 은밀한 유착관계다. 그중에서도 교육계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잡한 먹이사슬 구조는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공통점은 대부분 건설업자들이 낀다는 점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피디수첩>이 고발한 건설업자 얘기를 빌리자면 검찰 역시 토착비리의 먹이사슬에 기생하는 구조다. 총체적인 부패의 기초 위에 쌓아올린 바벨탑이나 다름없다.

6월 지방선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도 곳곳에서 돈 냄새가 풍긴다.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을 받으려면 5억~7억원이 든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여기에다 선거비용까지 합하면 출마자들이 쓰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단체장이나 교육감이 된 뒤 건설업자들과 결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부패 정치인을 심판해야 할 선거가 부패를 고착화하고 확대재생산하는 꼴이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민주당도 ‘정권심판론’으로 정부의 오만과 독선을 견제하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부패의 사슬을 끊는 일이다. 사실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의미를 갖는 선거구는 수도권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몇개에 그친다. 영호남의 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을 비롯해 대부분의 기초단체장, 광역 및 기초 의원은 그 영향권 밖에 존재한다. 지역 구도에 따라 판세가 정해지거나 유권자의 무관심 속에 비리 연루자들이 검증 없이 무혈입성하는 경우가 많다. 고착화된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기초단체장들이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중이다. 지난번 선거를 휩쓸었던 한나라당 출신이 대부분이다. 그럼 야당이 승리하면 달라질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15년 동안 민주당이 지배해온 호남을 보자. 고착화된 부패 구조가 한나라당 못지않다. 전남에서만 22명의 기초단체장 가운데 11명이 비리나 선거법 위반 등으로 낙마했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누가 이 견고한 부패의 먹이사슬을 깰 것인가? 한나라당인가, 민주당인가, 아니면 민주노동당인가. 사실은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어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든 주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체장들은 또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니까.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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