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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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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한 교회 목사가 철없게도 천안함 침몰이 ‘좌파 승조원의 소행’ 아니냐고 말한 일도 있지만,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의 ‘좌파 탓’ 버릇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몇몇 전직 장성이나 한나라당 의원은 대놓고 천안함 사건이 과거 10년 좌파정권의 물렁한 안보의식 탓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도 좌파정권 적폐론이 나왔다. 한데, 야유 한마디에 입을 닫았다. “좋다, 군도 좌파에 물들었다면 다른 분야처럼 뉴라이트든 뭐든 보수세력이 그 자리로 가라, 스스로 입대하기 늦었다면 아들이라도 자랑스럽게 군에 보내면 될 일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천안함 승조원들은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보통의 청년들이다. 인구나 직업 비례라면 한둘은 있을 법한 ‘힘 있는 아버지’는 없다. 나라의 위기 때마다 고위층 자제들이 앞장서 전선으로 향한다는 얘기는 먼 나라의 전설일 뿐이다. 이런 문제를 야유나 조롱 따위로 다룰 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주요 집단은 불신을 넘어 그런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군이 바로 그렇다. 한국적 맥락에서 보수의 다른 말이 안보 중시 세력이라면 군은 그 대표적 집단일 것이다. 그런 군이 안보에 실패했다. 군함이 가라앉기까지 까맣게 몰랐고, 지금도 어떻게 그리됐는지 긴가민가하다. 육해공군의 작전을 총괄하는 합참의장은 사건 발생 49분 뒤에야 보고를 받았고 포격 명령을 내려야 할 상황에선 연락이 두절됐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군이 자신들이 필요한 바로 그 시점에 제 할 일을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군은 지금껏 감추고 차단하기 바쁘다. 대신 확증도 없이 북쪽을 손가락질하는 일을 앞세웠다. 그 때문에 신중한 대응과 투명한 조사를 강조하는 청와대 쪽과 갈등도 빚었다. 제 잘못이 부각되는 것을 한사코 피하려는 비겁한 꼴로 비친다. 그런 타락은 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는 말 그대로 기존 질서를 지키자는 것일 게다. 민주사회에서 그 질서는 헌정과 법치주의에 다름아니다. 또 법치는 법원 판결과 절차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원의 전교조 명단 게재 금지 가처분결정을 무시하고 복종하지 않겠다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학부모의 알권리를 내세우지만, 그 목적이 이번 지방선거를 반전교조 싸움으로 몰고가려는 속셈임은 당사자들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보수의 근본까지 내팽개친 셈이다. 보수가 보수이기조차 포기하면 벌거벗은 증오와 욕망만 남는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나라당 등에서 느닷없이 주적 개념의 부활 따위가 대책으로 거론되는 것도 그런 점에서 걱정된다. 안보상의 득실을 따지면 굳이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할 필요는 없다. 이명박 정부도 그리 판단했다. “좌파정권 10년 집권으로 한국군의 강인했던 정신전력이 망가졌다”고 주장하는 일부 보수세력의 주적 개념은,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교육하고 대북 적개심을 불어넣자는 일종의 정훈교육이다. 그런 발상은 증오와 적대가 판치는 마녀사냥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된다.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를 모르지는 않는 듯하다. 지난 4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군을 질타하면서 민간자원을 활용하고 협력하라고 당부한 것도 제 기능을 못하는 군에 대한 답답함의 표시일 것이다. 사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마련한 국방개혁안은 군 문민화 확대, 현대전에 부합한 군구조 개편 등을 방향으로 명시해 놓았다. 지금껏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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