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남기 논설위원
|
그리스는 한때 유럽의 우등생이었다. 2000년대 중반 유럽 국가들이 2% 안팎의 성장에 머물 때 그리스는 3.6~4.2%의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유로존 가입으로 실질소득이 늘면서 소비가 크게 증가했고, 외국자본 유입으로 지역개발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실업률도 낮아지면서 호경기의 달콤한 맛에 취해 있었다. 그랬던 그리스는 불과 2~3년 만에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위기의 배경이 된 것은 사실이다. 금융위기가 도화선이 된 것도 맞다. 그러나 원인을 방만한 재정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성급한 진단이다. 그리스가 경제 수준에 비해 임금이 높고 연금 지출이 많은 것은 그다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199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열쇠는 유로화에 있다. 경제적 도약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던 2001년 유로존 가입이 거꾸로 그리스 경제를 옥죄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 체질이 약한 그리스가 유로를 쓴다는 것은 실질소득의 증가와 화폐가치의 상대적 고평가를 의미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경제 기반이 취약한 나라가 자국 화폐를 버리고 달러를 쓴다면 구매력이 높아져 물가가 오르고 씀씀이가 헤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외환위기의 위험이 없다. 또한 물가상승은 그리스의 실질금리를 낮추면서 자연스럽게 저축률 하락과 대규모 투자를 불러왔다. 저축과 투자의 불균형이 적자 경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더불어 유로존 가입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구조를 고착시켰다. 사실 그리스의 산업은 관광과 해운밖에 내세울 게 없다. 재정이 취약하고 산업경쟁력이 약한 그리스가 독일 등과 같은 유로화를 사용한다는 것은 화폐가치의 고평가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대규모 경상적자가 더해지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린 셈이다. 유로는 한편으론 외환위기의 방어막 구실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재정위기의 불씨를 더욱 키웠다고 할 수 있다. 마틴 펠드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유로를 버려야 한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의 3% 안팎이었던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 비율은 2000년대 들어 급증해 2007년 14.3%까지 불어났다. 국내총생산이 1조달러인 우리로 치면 매년 1400억달러 정도의 경상적자가 나는 꼴이다. 이러고도 위기에 빠지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재정지출 과다가 아니라 유로 체제의 모순을 더욱 비중있게 봐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섣부른 경제개혁 플랜이다.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뒤 경제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감세·투자촉진·공기업 민영화를 뼈대로 한 개혁에 착수했다.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로 거둬들인 수입은 60여억유로에 불과했고, 감세로 인한 손실은 컸다. 특히 35%였던 법인세를 25%로 낮춘 것이 결정적이었다. 재정 건전화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감세가 위기를 불렀다. 그리스는 뒤늦게 재정지출 감축과 증세에 나섰다. 그러나 핵심 내용은 부가세 등 간접세 인상이다. 법인세 등 기업에 대한 감세로 자초한 위기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는 꼴이다. 그리스인들의 시위를 이유 있는 저항으로 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스 위기는 단순히 방만한 재정운용의 결과만이 아니다. 유로존 가입으로 인한 경제체질 약화, 섣부른 감세 정책, 금융위기의 충격파 등이 더해진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위기다. 심도 깊은 분석과 성찰을 통해 교훈을 찾아야 할 때다.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