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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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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빌더버그 클럽>이라는 책을 심심풀이 삼아 읽었다. 옛소련 망명자 출신 언론인인 다니엘 에스툴린이 유럽과 북미 백인 권력층의 비밀 모임인 ‘빌더버그 클럽’을 16년 동안 추적해서 쓴 책이다. 책 내용은 몇몇 자본가집단과 정치집단이 영구집권을 노리며 몰래 세계 제국 건설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용으로 보면 저자는 진보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곧 드러난다. 에스툴린은 미국의 좌파 학자인 노엄 촘스키가 ‘허무주의적인 사회주의 사상’을 퍼뜨린다고 비난한다. 또 총기 휴대의 위험성을 지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을 찍은 마이클 무어 감독은 “빌더버그 클럽이 숨겨두었던 비밀 병기”라고 깎아내린다. 이쯤에 이르면 어처구니없는 망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파를 아주 싫어하면서 자본주의 권력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는 데는 열심인 언론인, 한국적 풍토에선 이상한 인물로 비칠 만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그 어떤 권력의 개입도 극도로 싫어하는 철저한 자유주의 신봉자는 서구사회에선 이상할 게 없는 유형이다. 게다가 에스툴린의 신념은 좌파도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책의 끝에 가서, 인간의 존엄성과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투쟁할 가치가 있다”고 선언한다. 심심풀이로 집어든 음모론 책이 이렇게 아름다운 투쟁 선언으로 끝날 줄이야…. 그를 보면서 한국의 현실이 더욱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땅의 기득권층, 특히 보수세력은 비웃음을 살 만큼 음모론에 집착하는 그와 비교해도 한없이 추하다. 최소한의 신념도 없는 듯하고, 어떤 가치를 목숨 걸고 지키는 것 같지도 않다. 보수를 자처하는 어떤 한나라당 의원들이 딱 그렇다. 자신들이 국회에서 만든 법대로 판결한 법원을 비웃으며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는 걸 신념에 찬 행동으로 포장하니 말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운운하나. 그들에게 있는 것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생활신조’뿐 아닌가. 보수라고 주장하는 언론들도 이랬다저랬다 하긴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폐쇄 지경까지 몰아간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폭 지지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완전 종속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하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기만적인 행태가 일반인에게도 전염된 게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1년 전쯤 서울에 사는 나이 지긋한 독자와 꽤 길게 통화하면서 그랬다. 이 독자는 보수적이지만 꽤 합리적이어서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 또한 <한겨레> 기자의 속내를 엿보고 싶었는지 기꺼이 대화에 응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농민 아닌 사람이 농지를 소유하는 문제에 미쳤고, 나는 비농민의 농지 소유는 농지법에 어긋난다고 했다.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농지는 농민이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물론 예외 조항도 있긴 하다.) 농지법을 잘 모르던 그 독자는 약간 당황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복잡한 사회문제를 법으로 간단히 재단해선 곤란하다”고 했다. 조금 전까지 법과 질서를 강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대화는 이쯤에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대화의 끝이 너무 씁쓸했지만, 진보·보수를 떠나 이 땅의 사람 대부분은 아직 착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너무 착해서 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만적인 행태를 낡아빠진 이념으로 치장하는 세력이 판치도록 그냥 두고 보겠는가. 이제 다시 심판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엔 지방정부를 정직하게 이끌 자질이 없는 이들만 솎아내도 큰일을 해내는 것이라고 본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의 이념이나 정책은 어차피 믿을 게 못 되기 때문이다.
신기섭 논설위원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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