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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7 19:36 수정 : 2010.05.28 14:55

여현호 논설위원





남북 사이에 오가는 말이 험악하다. 남쪽이 남북간 교역·교류의 전면 중단과 무력침범 때의 자위권 발동 방침 등을 밝히자, 북쪽은 다음날 곧바로 북남관계 전면 폐쇄와 불가침합의 파기 발표로 맞섰다. 북쪽이 조준 격파사격을 공언하자, 남쪽도 똑같은 무력보복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냥 ‘말 대 말’의 싸움은 아니다. 양쪽의 말은 언제라도 ‘행동 대 행동’으로 번질 것처럼 기세등등하다.

그렇다고 금방이라도 화약냄새와 쇳내가 날 것 같은 폭발 직전의 긴장과 공포는 아직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당장의 문제가 아닌 역사와 관념의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이러다 진짜 무슨 일 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은 지난 십수년 사이 어느 때보다 생생하다. 그동안에도 1·2차 연평해전이나 대청해전 따위 충돌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치와 갈등이 전면 단절과 대결로 이어지진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끈이 있었고, 총탄이 오간 뒤에도 대화채널은 가동됐다. 상호 파멸을 감수하기엔 남북 모두 걸린 게 많다는 계산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남북 사이에 핫라인도 없고, 대치를 벗어날 출구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남북은 짧은 시간에 지닌 카드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기본합의나 불가침합의 등 남북관계를 유지해왔던 장치들이 폐기되고, 완충 구실을 했던 경협이나 개성공단조차 버려질 기세다. 이러다간 서로 아쉬울 게 별로 없어질 수 있다. 아무 대책이 없는 것처럼 불안하고 걱정스런 일은 없다.

그런 불안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남북의 지도자,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감당하고 관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20여년째 이어져온 남북 협력 관계를 사실상 종식시키는 대북 강경조처들을 발표하면서도 당장의 파장을 가볍게 여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예컨대 경제 문제다.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뒤 환율과 주식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다소 안정됐지만, 남북관계가 긴장국면으로 바뀐 탓에 약간의 험한 말이나 대결 분위기로도 시장은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다. 북한 문제는 이제 환율을 급등시키고, 주가를 떨어뜨리고, 외화조달 금리를 높이며, 외국인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하게 하는 ‘상시 불안요인’이 된 것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한국 경제가 남들보다 더 큰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그 피해는 기업과 가계에 미친다.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이 북풍의 역풍에 당황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지금처럼 대북 강경조처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은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착각일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대응이 계산대로 될 것이냐는 점부터 의문이다. 북한이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나쁘게 작용할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겠느냐는 일부의 의문에 대해선, 북한 사회의 작동원리가 우리와 다르다는 반론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을 압박해 항복을 받겠다는 식의 정부 강경책은 되레 정반대의 결과로 치달을 수 있다.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게 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손써볼 수도 없는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몽유병 환자처럼 위험 속으로 걸어들어간 일이 인류사에서 한둘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만 해도 영국·독일·러시아 등 각국의 정치가들은 아무도 자신의 행동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오해와 잘못된 신호, 비합리적인 계산이 이어지면서 그리된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최후통첩을 전달한 외교관들은 적국의 외교관들과 부둥켜안고 망연자실했다. 그중 한 사람은 “사태는 통제를 벗어났고, 돌은 굴러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돌을 굴리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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