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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07 20:29 수정 : 2010.06.07 20:29

김종구 논설위원

지방선거가 있기 얼마 전 술자리에서 누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역술가가 그랬다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물에는 친화적인데, 불하고는 반대라더라. 청계천, 4대강은 물론이고 천안함도 따지고 보면 물이 아닌가. 촛불과 용산참사는 불이고…. 그때만 해도 천안함 사건으로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그럴듯한 이야기라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못내 씁쓸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무엇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물이란 게 무엇인가. 마른나무에 꽃을 피우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것이 물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끊임없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게 물이다. 그래서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설파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대통령의 정치행태는 물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물의 속성이 순리와 합리라면, 정반대로 역리와 무리가 넘친다. 물 흐르는 듯한 정치는 어림도 없다. 굳이 물과 불로 나눈다면 오히려 불에 가깝다. 십수년간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가치와 성과들을 한순간에 태워버렸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덩어리를 안겼다. 지금은 물의 시대가 아니라 불의 시대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물과 친화적이라니, 이것은 물에 대한 모독이다…, 대략 이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끝났다. 미리 승리의 축가를 불렀던 정부·여당의 처지에서 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결과다. 귀신이 곡할 노릇일 수도 있다. 맞다. 이것은 단순히 유권자들이 내린 심판의 차원을 벗어난 듯 보인다. 그것은 생명의 위기에 빠진 강물이 지르는 아우성이요, 파헤쳐지는 산천이 우리에게 던지는 준엄한 경고장으로 다가온다. 민심의 폭풍 저편에 깃든 자연의 위대한 힘이 느껴진다.

예로부터 ‘땅을 대함에는 여우걸음의 주의를 다하라’는 말이 있다. 의심이 많은 여우는 얼음이 언 냇물을 그냥 건너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 물소리가 들리지 않아 얼음이 깨질 염려가 없다는 확신이 들어야 건넌다고 한다. 따라서 이 말은 땅이란 한번 잘못 건드려 병이 들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존재이므로 신중하게 대하라는 당부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가 산천을 대하는 태도는 여우걸음(狐行)이 아니라 맷돼지의 돌진(猪突)이다. 옛사람들은 ‘산을 흔들고 땅을 놀라게 하고 맥을 끊고 기를 혼란시키면 어찌 사람에게 손해가 없겠는가’라고 경계했다. 자연은 존귀한 삶의 실체다. 살을 저며내고 뼈를 깎아내는데 어찌 신음하고 아우성치지 않겠는가.

제대로 된 위정자라면 스치는 바람결 하나에서도 깊은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모진 바람과 천둥벼락을 만났다면 그 연유를 성찰하고 방비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과성 바람에 불과하다거나, 재수없이 맞은 벼락이라고 외면하고 넘기면 화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선거 결과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연의 존귀함을 뒤돌아보라는 것이다. 불의 시대를 끝내고 물의 시대로 돌아가라는 지시다. 순리와 합리를 되찾으라는 주문이다. 낮은 곳으로 내려와 백성들 곁을 졸졸졸 흘러가는 냇물이 되라는 바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대통령은 자꾸만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려 한다. “한번 입장을 정하면 꾸준히 가야 한다” “바람을 좇아 다닐 수는 없다”는 따위의 이야기만 들려온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어차피 물로 시작했으니 물로 이야기를 끝맺으려 한다. 이 대통령 본인은 결코 인정하지 않고 싶겠지만 이미 물의 반란은 시작됐다. 이른바 권력누수다. 권력의 시곗바늘은 이제 정오의 한낮을 지나 점차 석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누수의 흐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빨라지고 거세질 것이다. 아무리 임기응변으로 막으려 해도 한계가 있다. 물과 친하다는 이 대통령께서 제발 물의 속성을 성찰해보았으면 한다. 물로 흥한 자 물로 망하려는가.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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