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17 20:41
수정 : 2010.06.1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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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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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등 대중적인 생태학 책을 쓴 작가에서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의 홍보책임자가 돼 ‘변절’ 논란을 빚은 차윤정 환경부본부장은 4대강 홍보잡지인 <4강 나래> 6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자연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므로 훼손되기도 변형되기도 해왔다. 이제 와서 자연을 자연대로 내버려두자고 하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다만 최소한 손질해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차씨는 4대강 사업을 옹호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되풀이해 왔고, 자신의 전직을 “생태학자의 사회적 커밍아웃”이라고 포장한 바 있다.
4대강 사업 반대가 현 상태로 놔두자는 것도 아니거니와 우리의 강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죽어 있지도 않다. 한 번이라도 강줄기를 따라가 본 사람이라면, 도심을 벗어난 강은 아직 자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4대강의 대대적 준설이 ‘최소한의 손질’인지도 의문이다.
상식적인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과학이라며 일방적으로 설득하려 드는 현 정부의 4대강 사업 홍보 태도를 차씨에게서 고스란히 발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사 과정에서 훼손당한 단양쑥부쟁이와 꾸구리는 지엽적인 문제이고, 강에 물이 많으면 수생태가 풍부해진다는 거침없는 그의 주장을 읽다 보면 애초에 생태학자보다는 홍보책임자가 적임이라는 느낌도 든다.
지방선거에서 민심을 확인하고도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 강행을 분명히 한 데 이어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끝까지 반대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사업 추진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지역개발을 내세워 19년을 끌던 핵폐기물처분장 터 선정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듯이, 4대강 사업 논란을 지역개발 논쟁으로 바꾸어 구체적인 개발이익이 걸린 주민의 목소리를 높여보자는 복안으로 읽힌다. 정부의 소통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한 이 대통령의 연설은 하루 만에 사회적 합의보다는 주민 편가르기를 통한 강행이란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소통은 남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견해를 바꿀 자세가 돼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그 출발은 상식의 공유다. 뻔히 알 만한 것도 인정하지 않을 때 대화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4대강 사업에서 그런 예는 많다. 물부족은 산간과 섬에서 주로 일어나는데 정부는 ‘물그릇’을 키워 가뭄에 대비한다고 주장한다. 4대강이 흐르는 곳은 우리 국토에서 가장 낮은 곳이고, 물은 무거워 수송비용이 많이 든다는 상식에 비춰보면 태백의 가뭄과 남한강·낙동강의 물그릇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홍수는 주로 산간계곡에서 일어나는데도 4대강을 준설해 홍수를 막는다고 한다. 정부는 “본류 정비로 홍수위가 낮아지면 지류의 수위도 함께 낮아져 피해를 막아준다”고 대답하지만, 수문학자가 아니라도 본류에서 먼 산간계곡에 무슨 수위저하 효과가 난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러면서도 4대강 사업을 하면 당장 홍수피해가 사라질 것처럼 말한다.
이런 불통에 답답함을 느끼는 건 일반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토목공학자 1세대인 이원환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한토목학회가 내는
5월호에서 “보는 애초 관개용수의 취수를 하기 위한 수리시설이지 홍수조절을 위한 저수시설이 아니”라며 마스터플랜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첨단과학보다 경험이 중요한 토목분야에서 원로의 목소리는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그런 원로가 이미 보 공사의 30%가 진행된 마당에 계획을 다시 짜라는 지적을 한 것이다.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되고 곳에 따라서는 홍수피해도 일어날 것이다. 네덜란드는 2000년 ‘강에게 공간을’이란 대규모 하천정비사업을 시작했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1000년 동안 견지한 ‘강과 싸우는 정책’을 현명하게 물러나는 것으로 바꿨다. 이 사업이 4대강 사업의 모델이라는데, 그 근본정신엔 눈을 감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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