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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05 23:14 수정 : 2010.07.06 11:18

여현호 논설위원

우스개부터 하나. 일주일은 7일이지만, 부산갈매기들에겐 3일이다. 이긴 날, 진 날, 그리고 야구 없는 날. 온 도시가 야구로 들썩이는 부산에선 사람들의 희비 사이클이 비슷하다. 고향을 떠난 지 한참 된 출향인사도 마찬가지다. 팀이 연패한 지난주는 유달리 더웠고, 이대호가 큼지막한 홈런을 치고 이긴 그제는 술맛도 달았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짧지도 않다. 1970년대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리던 구덕야구장에서 뛰던 까까머리 고교생이 고향팀 선수가 됐고, 지금은 어느새 투수코치·수비코치·2군감독이다. 그런 결 깊은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환호하고 함께 탄식한다. 그게 고향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고향이 있다. 그도 다른 사람처럼 고향 음식이 입에 맞고, 고향 사람들이 미덥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향이 아니라도 대통령 역시 길든 짧든 기쁨과 아픔을 함께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절로 마음이 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유독 심하다. 다른 어느 대통령보다 그런 이들에게 연연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영포회’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비선조직 전횡의 배후로 의심하는 영포회가 꼭 ‘영일·포항 출신 5급 이상 중앙부처 공직자 모임’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대통령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형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향 중심의 인적 네트워크를 뜻한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들은 아쉬움의 역사를 공유한다. 대통령과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공유하는 이상득 의원은 정치무대에서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이다. 동향 선배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좀체 세력을 모으지 못하던 정치초년병 이명박의 조언자였다. 영일·포항이 대구·경북에서도 변방이었으니, 동향의 공직자들도 끌어주는 이가 아쉬웠을 것이다. 이 대통령도 공무원 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은 사람이다. 그가 ‘포항 라인’의 공직사회 견제 구실을 인정했다는 얘기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견제를 하다보면 인사까지 좌지우지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전횡은 애초부터 불 보듯 뻔했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이 대통령은 처음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좌절한 뒤 미국에서 1년 넘게 어렵고 힘든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정치적 장래를 모색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에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지금 청와대와 정부에서 적잖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상당수는 출신 분야에서조차 의아해했던 의외의 발탁이었다.

그런 식으로 아는 사람, 특히 정서적 경험을 공유한 이들에게 기대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선 위험천만한 일이다. 가족·친구 등 ‘우리’라는 말로 표시되는 1차집단은 강한 소속감이나 정서적 일체감이 특징이다. 학연·지연을 기반으로 한 연고집단이 그런 일체감을 강조하면서 무리를 짓게 되면 안과 밖을 구별하게 된다. 이번 민간인 불법사찰을 저지른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직원의 절반 가까이를 포항지역의 특정 고교 출신으로 채우는 등 ‘우리 사람’만 칼자루를 쥐도록 한 것이 바로 그렇다.

그리되면 처음에는 집단 바깥에서도 자꾸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민주당 집권 시절 매생이국과 짱뚱어탕을 내놓는 식당이 번성했고,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과메기를 내놓는 식당이 문전성시인 것이 그런 예다. 하지만 권력의 힘이 떨어지면 되레 그 집단은 공직사회와 정치권에서 외면과 공격을 받게 된다. 이번 영포회 논란이 바로 그런 양상이다. 이는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가까이했던 사람들을 놓는 게 불안하다고 계속 끌어안으려 한다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 역대 정권에서 익히 봤던 일이다. 많은 이들이 납득할 정도로 영포회 의혹을 뿌리뽑느냐, 아는 사람만 쓰던 데서 벗어나느냐가 지금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험문제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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