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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9 19:37 수정 : 2010.07.19 19:37

김종구 논설위원

요즘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3음절로 하면 ‘레임덕’이요, 4음절로 하면 ‘권력누수’가 아닐까 싶다. 현직 대통령치고 레임덕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이 대통령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할 것 같다. 임기가 아직 반환점을 돌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레임덕이란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할 일이기도 하다.

레임덕이라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이 ‘지금부터 절뚝거리는 시기’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하지만 그 징후와 진행 과정은 있기 마련이다. 불행히도 최근 나타나는 양상을 보면 이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징후는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우선, 잇따른 선거 패배는 매우 치명적이다. 이미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통제와 간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둘째, 친이 세력 내부의 자중지란 역시 대통령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 주변 인물들은 애초 충성심보다는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모여든 집단이어서 앞으로 ‘봉숭아 학당’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셋째, 여권 내부에 강력한 차기 주자가 존재하는 현실은 야당 쪽에 유력한 후보가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현직 대통령에게 위협적이다. 넷째, 현 정권은 미래의 비전을 향한 여정의 동력을 이미 상실했다. ‘모두 부자 되는 세상’이니 ‘선진일류국가’ 따위의 깃발은 이미 빛이 바랬다. 남은 임기가 관성의 힘으로 굴러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권의 존재 의의를 시대의 당위나 미래의 희망이란 관점에서 찾기는 어려워졌다.

레임덕의 위기가 도래했을 때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은 대개 엇비슷하다. 우선 친정체제 구축이다. 최근 당·청 개편에서 수뇌부가 모두 친이 주류 핵심(안상수 대표)과 최측근(임태희 비서실장)으로 채워진 것은 이 대통령 역시 이 공식에 충실함을 보여준다. 이 흐름은 앞으로 개각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정국 운영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의제 발굴도 레임덕 방지책의 단골 메뉴다. 여권이 최근 분권형 대통령제 등의 개헌 공론화를 시도하는 것이나, 보수대연합론 논의를 꺼내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치권의 지형 변경 문제는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한 개헌과 동전의 앞뒤처럼 밀접히 연관돼 있다.

하지만 이런 방책이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특히 국민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치공학적 시도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아예 발상을 180도 전환해 보면 어떨까.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는 것이다. 레임덕은 헤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더욱 깊이 빠져드는 늪과 같다. 그렇게 아등바등하다 실패한 지도자로 막을 내리느니 차라리 지금부터 ‘강한 대통령’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강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레임덕을 즐기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권한을 대폭 이양해 몸집을 가볍게 하고, 국정과제의 우선순위를 순리에 맞게 재조정하며, 야당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유연한 국정운영 태도로 전환하는 일이다. 이미 친이 세력 스스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외치며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필요성까지 제기한 판국이니 지금부터 모범을 보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과거 정부의 예를 분석해 보면 대통령은 임기 중 세 차례의 국정쇄신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첫번째는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이고, 두번째는 내각이 총사퇴해야 할 정도의 상황에 봉착했을 때이며, 세번째는 임기 말 권력누수가 시작되는 때다. 그리고 세번째의 경우는 어떤 쇄신안을 내놓아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공식에 대입해 보면 이 대통령은 두번째와 세번째 단계의 중간 지점쯤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만약 이 시점에서 레임덕을 즐기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그는 분명히 지금까지의 실패를 딛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일까.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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