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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27 19:44 수정 : 2010.09.27 19:44

김종구 논설위원

정부 수립 이후 감사원장 출신으로 국무총리에 발탁된 사람은 딱 세 사람이다. 이한기·이회창·김황식씨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김황식 원장은 아직 후보자 신분이고, 이한기(1995년 작고)씨의 경우는 서리 딱지를 떼지 못한 채 끝났으니 정식 총리를 지낸 사람은 아직까지는 이회창씨 한 사람뿐인 셈이다.

김황식 후보자를 놓고 ‘첫 전남 출신 총리’ 운운하지만 사실 그 타이틀은 이한기씨한테 돌아갈 뻔했다. 전남 담양 태생인 그는 전두환 정권이 말기로 치닫던 1987년 5월 노신영 총리 후임으로 발탁됐다. 정권이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인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국회가 공전하면서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못하다가 6·29 선언이 나오고 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임명된 지 48일 만에 사임했다. 그가 사임하면서 남긴 “48일이 48년 같았다”는 말은 유명하다.

이한기씨가 전직 감사원장에서 총리로 지명된 것과 달리 이회창·김황식 두 사람은 현직 감사원장에서 곧바로 총리에 발탁된 경우다. 앞서 대법관 임기를 미처 채우지 않은 채 감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똑같다. 그러나 총리 발탁 배경의 주안점은 사뭇 다르다. 이회창씨의 경우 쌀시장 개방으로 궁지에 몰린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그의 ‘대쪽 이미지’를 높이 산 것이라면, 김황식 후보자는 청문회 통과를 염두에 둔 ‘무난한 이미지’에 기댄 측면이 짙다. 오히려 김 후보자의 경우는 김대중 정권 시절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한 뒤 김석수 총리를 발탁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그도 역시 대법관 출신이었다. ‘첫 여성 총리’, ‘40대 젊은 총리’라는 야심찬 구상이 좌절된 뒤 청문회 통과에 최우선적 방점을 둔 인사로 급선회한 공통점이 매우 흥미롭다.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직책을, 그것도 세 자리씩 연거푸 거머쥔 것을 보면 김황식 후보자는 하늘이 내린 대단한 운세를 갖고 태어난 게 틀림없다. 하지만 벼슬길에 있어 나아감만 있지 물러남이 없는 모습을 보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예로부터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퇴를 분명히 하고, 그침과 사양함을 아는 것이라 했는데 그에게는 그런 미덕이 엿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봉사정신이 투철하다고 해도 말을 바꿔 타며 ‘마지막 봉사’를 계속 연장하는 것도 그리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김 후보자는 2008년 감사원장 인사청문회 때도 감사원장이 자신의 ‘마지막 공직’이라고 다짐한 바 있다.

감사원은 예전으로 치면 사헌부쯤에 해당한다. 사헌부를 잣나무(측백나무)의 푸른 기상에 빗대 백부(栢府)라고도 불렀듯이 이 조직에 합당한 단어는 올곧다, 추상같다, 깐깐하다, 범접하기 힘들다 등이다. 조직의 수장이 이런 덕목에 충실할 때 권력의 외풍도 막고 직무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도 지켜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 후보자에게는 그런 기상과 풍모가 엿보이지 않았다.

돌아보면 감사원이 이토록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은 적도 일찍이 없었다. 위상에 걸맞지 않게 동네 주먹패 수준의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권력에 유리한 감사 결과는 슬그머니 흘리고, 정국에 영향을 끼칠 민감한 내용은 꽁꽁 싸매고 발표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감사원이기도 하다.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는 데 수훈을 세운 실무자들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승승장구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 한가운데에 바로 김황식 원장이 자리한다. 하기야 권력에 대한 이런 겸손함(!)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총리 김황식’의 장래 모습은 어떨까. 일단 그동안의 성향으로 봐서는 대통령-총리의 불협화음 걱정은 붙들어매도 될 듯하다.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는 더욱 열성을 보일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진정한 성공을 위한 직언과 고언에 힘을 쏟을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불타는 봉사정신으로 봐서는 이것이 그의 ‘진짜 마지막 봉사활동’이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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