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20 20:41
수정 : 2010.12.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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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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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 쓴 칼럼은 “과거와 같은 열기가 없는” 대통령선거를 두고 여야의 대선 후보가 기존 지지층으로부터도 불신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지도자’라기엔 “이런저런 흠이 있어 존경할 순 없지만, 일은 잘할 것 같아” 보이는 ‘일꾼’으로 비쳤다. “께름칙한 기분으로 치러야 할 선거”를 안타까워하면서 “몇 해 뒤 오늘, 이 한 표의 값어치”를 궁금해한 것도 어느 쪽으로건 자신있는 선택을 하지 못한 때문이었을 게다. 돌이켜보면 대개 그런 분위기였다. 물론, 그때도 나쁜 징조는 있었다. ‘아주 크게 잘못될 일이야 있겠느냐’고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켰을 뿐이다.
그제, 12월19일은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지내고 보니 불길한 예감은 예감대로 들어맞고 그나마 걸었던 기대는 여지없이 어긋났다. 그리 생각할 이가 또 한둘이겠는가. 그 방향과 강도는 각기 다르되, 실망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무엇보다 그는 일꾼이 아니었다. 연평도 사태에 대응하는 모습은 보수의 시각으로도 실망스럽다. 확전을 자제하라고 했다가 다시 응징을 외치는 따위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두고선 보수성향 인사까지도 “전반적으로 너무 서투르다”고 혀를 찬다. 미숙한 초기대응을 강경대치로 덮으려는 모습이지만, 그 와중에 한반도는 분쟁지역이 됐고 중국과의 관계는 나빠졌다. 투자 위축과 자본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악화이고, 2008년 금융위기를 넘는 힘이 됐던 중국 변수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실책이다. 일을 제대로 한다면 이런 상황은 피했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기업인 시절의 그는 칭찬엔 고래처럼 일을 해내지만 비판을 받으면 의기소침해하거나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계속되다간 아무런 통제력 없이 격랑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이제 주변의 말도 잘 안 듣는다. “직언을 하는 이가 대통령 주변에 다섯만 되어도 정권이 굴러간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안 보인다.” ‘친이’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다. 청와대 안에서도 일이 불거진 뒤 한 박자 늦게 진언을 하는 수석은 있지만,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없다고들 수군거린다고 한다. 인사나 쟁점에 관해 비판적이거나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은 위로 올라가면서 쏙 빠져 결국 듣기 좋은 말만 대통령에게 넘겨진다고 전하는 한나라당 의원도 있다. 애초 대통령이 귀에 단 말만 찾고 자기 말만 하는 까닭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 대통령이 역정을 낸다는 얘기가 청와대 담 밖으로 자주 흘러나온다. 그런 결과가 되레 후폭풍만 낳은 예산안 날치기 따위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다.
얼마 전, 오래 알아온 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올해는 호랑이해입니다.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시는 새벽 3시부터 5시까지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암울하고 어두운 일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내년은 토끼해입니다. 묘(卯)시는 새벽 5시부터 7시까지입니다. …한쪽에 지는 달이 있지만 다른 쪽에서 해가 밀고 올라오는 시간입니다.”
그런 희망이 큰 힘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날짜만 헤면서 기다리기엔 불안하다. 당장 이 대통령이 더 외곬으로 빠질 수 있다. 그는 군 개혁을 하겠다면서 고등학교 후배를 중용했다. 군심을 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말부터 잇따를 인사에도 측근이나 심복 이름만 오르내린다. 반면에 한때 그를 도왔던 이들 가운데선 거리를 두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외면당한 탓도 있고, 선거나 앞날 걱정 때문에 스스로 멀어진 이도 있다. 그렇게 주변에 소수의 제 사람만 두게 되면 대통령이 상황을 오판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측근이라는 이들이 모두 찬양만 해댄다면 더할 것이다. 그 결과는 지금보다 더한 퇴행이나 혼란이다. 더 나쁜 일이야 있겠느냐고 손 놓고 있을 때는 아닌 듯하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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