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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0 20:49 수정 : 2011.01.10 20:49

여현호 논설위원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지낸 정동기씨를 감사원장에 기용하려던 일은 이제 한판의 소동으로 끝날 모양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경위는 여러모로 곱씹어봐야 하겠지만, 당장 눈에 걸리는 대목이 두엇 있다.

하나는 감사원장 인사청문위원으로 예정된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부분 정씨와 함께 근무하기도 했던 검찰 선후배라는 점이다. 정씨는 아마 그들에게 변호사 구실을 기대했을 것이다. 실제 그랬을 수 있다. 하긴 검찰 출신이라면 그 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겠다. 그가 아등바등 타고 넘어온 승진의 사다리나 권력 줄대기는 그만의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전관예우라지만 검찰 출신에겐 더더욱 한철 장사이니 ‘그 정도 돈이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들끼리나 통할 얘기지만, 바로 그래서 더욱 깨기 힘들다.

청와대도 그랬던 것 같다. 여론에 놀란 한나라당이 ‘정동기 감사원장 부적격’ 입장을 밝힐 때까지도 청와대는 ‘불법이나 탈법은 없다’는 말만 되뇌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자체 예비청문회에서도 고액 보수에 대한 정 후보자의 해명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불법과 탈법이 아니라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적이 없다는 말도 했다. 자신들이 보기엔 특별한 흠이 없으니 그냥 가자는 생각이었을 게다. 일반 국민의 정서는 물론 여당 기류와도 한참 동떨어진 생각이다. 대통령 비서 출신이 감사원장을 맡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바깥의 일치된 공론은 청와대 안에선 제대로 거론조차 안 된 듯하다.

섬뜩한 일이다. 그런 상황은 청와대의 기구와 조직이 민심에서 철저하게 고립·단절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비서들이 몇백명이라고 해도 고작 소그룹일 뿐이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 11시까지 열심히 일한다고 한들 자신들끼리 맴돌며 잘못된 생각을 거듭 확인하고 굳히는 일만 되풀이하는 꼴이다. 정무적 판단이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다수와는 다른 주장이나 정보를 제시해 되돌아보게 하는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 구실을 하는 이도 없다면 이는 곧 조직의 기능 마비다. 연평도 사태 뒤의 우왕좌왕이나, 최악의 구제역 확산에도 속수무책인 청와대의 위기관리능력 실종은 그런 기능 마비의 한 증상이다.

그렇다고 참모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청와대 비서들이 사는 세상은 바로 대통령이 만들었을 터이다. 문제될 것이 뻔한 정동기씨의 감사원장 지명이 강행된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한 의지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참모들도 뭐라고 토를 달기 어렵다. 버릇처럼 ‘해봤어?’라고 다그치는 대통령 앞에선 ‘안 됩니다’라고 먼저 말하기 힘들다. 일단 어떻게든 강행하고 밀어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가 무리한 국정 운영이다.

그런 예는 또 있다. 이 대통령은 ‘권력 누수’(레임덕)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 말은 딴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니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하라는 뜻이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태도라면 참모들은 집권 후반기, 현실적 어려움, 여당의 반발, 여론 동향 따위 레임덕을 떠올리게 하는 말은 입에 담기 어렵게 된다. 곧 청와대 내부의 언어체계가 왜곡되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한 말만 오가다 보면 제대로 현실에 대응할 수 없게 돼 결국 큰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다. 한나라당이 대놓고 대통령의 감사원장 지명에 반기를 들어 청와대의 뒤통수를 치는 셈이 된 지금의 상황이 꼭 그렇다. 바로 그게 레임덕이다.

이왕에 그런 대통령의 임기가 저물기 시작하는 마당이라면, 다음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소통이라도 제대로 하는 이를 찾을 일이다. 원칙과 선언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가야 할 길을 내팽개쳐두진 않는지, 자신의 정치적 자산에 어긋나는 과잉과 도발로 주변을 헷갈리게 하진 않는지, 대책 없는 싸움으로 이끌면서 피로도만 높이고 있진 않은지 따위를 살펴보면 그의 나중 모습이 보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선거 때 실수를 그나마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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