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24 19:13
수정 : 2011.01.2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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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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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일종의 전초전이다. 민주당의 무기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위력이 입증된 ‘무상복지’다.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의제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한나라당은 ‘세금폭탄’으로 대응하고 있다. 초기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다가 요즘은 국민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세금폭탄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권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세금폭탄이란 용어가 다시 효과를 발휘해주길 기대하는 눈치다.
복지 논쟁이 이번처럼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이 되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선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복지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언제나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빈곤이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책임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선별주의와 보편주의, 재원 조달 방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쟁점이 널려 있다. 빈부 차이뿐 아니라 세대별, 성별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복지체제는 그 나라의 경제 수준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상황까지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가 얼마나 복잡한 주제인지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핀란드에선 애초 좌파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부모들에게 아동수당을 주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시행을 앞두고 좌파에서 강한 반론이 제기됐다. 아동수당이 여성을 가정에 붙잡아둠으로써 사회 진출을 방해하는 수단이 될 것이란 논리였다. 복지제도는 또 자신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드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 미혼모 수를 오히려 증가시키는 경우가 그렇다. 재원만 마련된다고 복지체제가 저절로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고용시장 상황과 노령화 추세다.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고용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용 없는 성장을 부추기는 수출 일변도의 기존 경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고용 상황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고, 어떤 복지 시스템도 제대로 가동되기 어렵다.
고령화 추세도 심각하다. 노인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급증하고 있는 노인 의료비 지출 증가는 건강보험뿐 아니라 복지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변수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65살 미만 국민의 월평균 건강보험 진료비는 5만5388원이다. 그러나 65살 이상 노인의 월평균 진료비는 4배가 넘는 23만4198원이다. 11% 안팎의 노인이 전체 의료비의 32.2%를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10~20살 청소년을 교육하는 것보다 80살 노인을 90살까지 살게 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의 무상복지론을 둘러싼 복지 논쟁은 좀더 차분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복지 증진을 위해 조세 부담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부유세 같은 수단을 동원해 증세를 하면 복지가 해결될 것이란 단순한 생각은 참 위험한 발상이다. 높은 세금에만 의존하는 복지국가 체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의 복지 시스템은 1960년대 실업률 1~2%라는 최상의 경제여건 위에서 꽃을 피웠으나 1970년대 경제상황이 악화하고 고령화 사회가 닥치면서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우리는 특히 유럽식 사회복지가 쉽지 않은 여건에 있다. 유럽과 같은 혼합경제 체제도 아니고,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노동조합 같은 추동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모델에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 여건에 맞는 재원 마련 방안과 함께 고용시장 개선과 노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우리의 사회복지는 이제 첫걸음을 내딛는 단계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선진국의 복지국가 체제를 무너뜨린 중대한 도전들과 맞닥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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