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31 18:40
수정 : 2011.01.3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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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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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내일부터 설 연휴라는데 도무지 명절 기분이 나질 않는다. 이런저런 주변의 우환이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 같진 않다. 시골이 고향인 이들은 더하다. 구제역 탓에 고향에선 출향인들에게 귀성 자제를 호소한다. 고향에 가더라도 뒤숭숭한 분위기에 반가운 얼굴들은 아닐 것 같다. 차례상 앞에서도 가벼운 기분만은 아니겠다. 오를 대로 오른 물가 탓에 이 나물접시와 저 고기산적의 값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고, 누군가에게선 봄 되면 더 기승을 부릴 전셋값 걱정도 나옴 직하다.
그런 터에 차례상 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긴 생뚱맞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뿌리와 줄기를 따지기보다는, 한두 마디 촌평이나 욕설 한 가닥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기실 지금의 정치 쟁점은 그렇게 단순화할 수 있는 일들이다. 예컨대 복지논쟁의 경우, 애들 점심 한 끼 마음 편히 먹이자는데 서울시장은 왜 그렇게까지 쌍지팡이 들고 반대하는지, 주민투표를 할 수나 있는지부터 담박하게 물으면 설명만 구구해진다. 자칫 사람만 실없게 된다.
개헌 문제라고 다를까. 개헌은 지난해 이런저런 설과 음모론만 무성하다 짚불 꺼지듯 사그라진 쟁점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나라당이 개헌 의총을 서두르고, 며칠 전에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말을 보태 군불 지피기에 나섰다. 사람들이 모일 명절에 화제가 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정말 그랬다면 착각이다.
지금의 개헌론엔 도통 호응이 없다. 사람들은 개헌 얘기에 “되겠어요?”라고 반문한다. 나는 별 관심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떠냐는 투다.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해도 하루나 이틀 이상 화제가 되지 않고, 언론에서도 제대로 거론되지 않는 것은 그런 무관심층이 대세라는 방증이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은 어느 나라보다 집단으로 겪은 정치적 경험이 풍부하다. 그런 국민이 보기에 지금 개헌은 될 일이 아니다. 간단한 계산이다. 개헌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이들부터 찾기 힘들다. 여당 안에서도 반대가 많으니 개헌 발의는커녕 당론 확정조차 어렵고, 야당이 반대하니 국회 의결은 더더욱 어렵다. 세종시 파동을 보면 이명박 정권의 정치력으로 개헌 논의를 제대로 이끌어가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내년 총선에 온통 정신이 빠져 있을 국회의원들이 개헌 문제에 전심전력을 다할 리도 없다. 과거 삼선개헌이나 유신헌법처럼 힘으로 처리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사정은 다 아는 일이다. 개헌을 거론하는 쪽도 당연히 안다. 그래서 지금의 개헌론이 일종의 ‘출구전략’이라거나 5~6월쯤엔 마무리될 것이라고 귀띔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도 공식적으론 개헌을 하겠다고 우긴다.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하다가 시간이 더 모자라는 지금 와서 전반적으로 다 고치자고 덤비는 데선, 애초 성사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는 의심이 굳어진다.
뻔히 안 될 일을 무엇 때문에 서두르는 것일까. 아마 판을 흔들려는 심산일 게다. 지금대로 가다간 ‘레임덕’(권력누수)이 불가피하고, ‘거북스런 사람’에게 권력이 송두리째 넘어갈 판이니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 한 것이겠다. 당장은 친이명박계를 줄 세우는 효과도 기대한 듯하다. 하지만 이 역시 착각이다. 개헌이나 정계개편은 거의 마지막 수단이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모든 것을 빨아들여 복잡하게 요동치는 탓에 어느 방향으로 귀결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전망이나 계산도 힘들뿐더러 설계가 있다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 애초 기대와 달리 되레 권력누수를 가속화하는, 허망한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직전 정부의 개헌론이 바로 그랬다. 정치인들로서도 줄을 서야 한다면 불확실한 가능성보다는 확실한 미래 권력이 더 솔깃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나라 전체로 보면 국정혼란이고 국력 낭비다.
그런데도 헛된 시도에 미련을 못 버리는 이들은 있다. 어떻게든 한몫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정치공학으론 지금 사람들의 헛헛한 마음에 와닿을 리 없는데도 그렇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요즘 대통령 주변에 다시 늘었다. 걱정스럽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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