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2.10 20:06
수정 : 2011.02.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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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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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요즘 금융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다. 금융계 인사들뿐 아니라 언론의 관심이 온통 그의 거취에 쏠려 있다. 최근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후임 회장 후보를 압축했을 때, 후보가 누구냐보다 강 특보가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뉴스거리였다.
시장에서 강 특보의 행보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서 배운 학습효과 때문이다. 이 정부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지난 정부 인사들을 철저히 솎아내고 집권에 도움을 준 공신들에게 자리와 떡을 나눠주었다. 특히 십수억원의 고액 연봉을 챙길 수 있는 거대 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이 모두 차지했다. 그런 마당에 이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에다 대통령의 경제고문 격인 강 특보가 든든한 금융회사 하나 챙길 것으로 보는 시장의 시각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강 특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런 얘기들이 나도는 우리 금융계의 현실 자체가 문제다.
최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조선시대 쿠데타로 집권한 세조의 공신 정책이 떠오른다. 어린 단종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즉위한 세조는 한명회·신숙주 등 모두 40여명의 공신을 책봉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등공신에게는 고위 직책과 함께 전토 150결과 백금 50냥 등을 부상으로 주었다. 더욱 문제는 공신의 자제와 사위들까지 원종공신으로 책봉했는데 그 수가 무려 2300명이었다. 원종공신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벼슬자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우선 녹봉만 주기도 했다고 한다. 세조의 이런 공신정책은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벼슬자리를 왕과 공신들의 사유물로 전락시킴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허물어뜨렸다.
어느 분야보다 전문성과 공공성이 중시되는 금융회사 시이오 자리를 공신들에게 떡고물 나눠주듯이 배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대학 총장 출신의 어느 회장은 미래 고객을 잡는다며 수익도 나지 않는 대학교 앞 점포 늘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한 회장은 친정부 인사들을 대거 사외이사로 영입해 한 자리씩 챙겨주었다. 이들이 장악한 대한민국 금융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나을 것 같다. 얼마 전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이 금융시장에 빅뱅을 일으킬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이런 상전들을 모시고 무얼 해낼지 걱정이 앞선다.
순수 민간회사인 신한금융지주도 별반 나을 게 없다. 후임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벌이는 힘겨루기는 또다른 자리다툼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석연찮은 검찰 수사로 면죄부를 받긴 했지만 라 전 회장도 신한 사태에 책임이 있는 한쪽 당사자다.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진즉 후선으로 물러났어야 함에도 여전히 후임 회장 인선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건 우리 금융산업이나 신한의 앞날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신한금융을 반석에 올려놓은 공로가 크긴 하지만 그의 시대도 이미 지나갔다. 신한은 지난해 이전투구 와중에도 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다. 창업세대들이 물러나도 회사 경영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방증 아닌가.
눈 내리는 소리까지 듣는다는 청설(聽雪)이란 호를 가진 강 특보가 그를 둘러싼 시중의 여러 소문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아직까진 신중하게 처신하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이나 자신을 위해 그나마 다행이다. 강 특보가 6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2005년)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여보게 도우,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솔바람 한 줌 집어 가렴! 농담 말구! 그럼 댓그늘 한 자락 묻혀 가렴! 안 그럼 풍경 소릴 들고 가든지.”(석용산) 바람처럼 흘러가는 권력의 한 귀퉁이나마 놓치지 않으려고 바동거리는 라 전 회장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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