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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4 19:21 수정 : 2011.02.24 21:0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내일부터 300만 새끼돼지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03년 1월31일치에 행복한 얼굴로 공을 쫓는 돼지들의 사진과 함께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영국에 구제역이 퍼져 양·돼지·소 600만마리를 땅에 묻은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때의 일이다.

유럽연합은 돼지 복지 지침의 하나로 그해 2월부터 장난감 제공을 의무화했다. 즐겁게 자란 돼지가 건강한 돼지고기를 보장한다는 판단에서다. 양돈 선진국 덴마크에선 이에 더해 돼지에게 체온조절용 샤워와 진흙목욕용 수렁을 제공하도록 했다.

유럽연합은 가축을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감수성과 지각이 있는 존재”로 정의한다. 우리나라에도 “동물의 생명과 복지를 증진”하고 “생명의 존중 등 국민의 정서 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보호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땅의 돼지는 공놀이를 하기는커녕 산 채로 땅에 묻히는 처지이다.

구제역이 수그러들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이 땅에 남긴 상처는 너무 크다. 지난 석달 동안 340만마리의 가축을, 대부분 병에 걸리기도 전에 예방 차원에서 땅에 묻었다. 소는 사육 마릿수의 4.5%인 15만마리지만 돼지는 33%인 324만마리가 살처분됐다. 구제역 때문에 심각성이 가려졌지만,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도 548만마리에 이른다.

제 손으로 받아내고 쓰다듬으며 온갖 정성을 기울여 기르던 가축을 한순간에 묻어버린 축산농민의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야 말할 것도 없다. 랩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슈퍼마켓의 소·돼지·닭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불편한 진실’을 알아버린 소비자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리에겐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살처분 가축의 매몰지가 남았다.

서울 난지도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가장자리 땅속엔 높이 17~56m, 길이 6㎞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둘러쳐져 있다. 쓰레기가 썩은 물인 침출수가 한강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장벽이다. 1970년대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됐지만 침출수는 2020년까지 처리해야 한다.

이제 난지도와 같은 비위생 매립지가 전국에 다시 생겨났다. 11개 시도 4406곳에 이르는 가축 매몰지는 미리 지형과 침출수 처리를 고려해 제대로 만든 매립장이 아니다. 그러니 매몰지 300m 안에 있는 지하수 관정만 1만3000곳에 이르고, 정부 스스로도 매몰지의 실태를 모두 조사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매몰지에 세운 “3년 동안 발굴 금지” 팻말은 마치 3년만 지나면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위생적인 쓰레기 매립지라도 법적인 사후관리 기간은 20년이다. 영국 구제역 사태 때 조성한 대량매몰지 연구에서도 침출수와 오염가스는 20년까지 나온다고 예측했다. 돼지 사육 마릿수는 1년쯤이면 회복되겠지만 그 후유증은 수십년 동안 계속된다는 얘기다.

최신 설비와 전문인력을 확보한 수도권 매립지도 한동안 침출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런 침출수를 매몰지에서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축소하는 데 급급하던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입에서 “환경재앙”이란 말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초동대응에 실패한 정부가 우왕좌왕하다 시기를 놓친 것을 만회하려는 듯 뒷북대응이 요란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아이티 기술을 총동원하겠다” “24시간 민원 콜센터를 운영하겠다” 등등. 하지만 매몰지 관리만 잘 하면 문제가 끝나는가. 구제역 사태를 부른 근본부터 따져야하지 않을까.

이 좁은 땅에서 수입사료를 먹여 양돈농가당 1400마리에 이를 정도로 대형화·기업화한 축산이 과연 지속가능한가. 살처분은 불가피한가. 1970년엔 1인당 소·돼지·닭고기를 합쳐 5.2㎏을 먹다 2009년 36.9㎏으로 늘린 소비자도 함께 성찰할 질문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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