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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8 18:40 수정 : 2011.02.28 18:40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삼성전자 천안공장에서 근무하다 투신자살한 김주현(25)씨의 49재 추모제가 어제 천안역 광장에서 열렸다. 49재라면 장례식 이후 치러지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김씨는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병원의 차가운 안치실에 누워 있다. 유족들의 진실규명과 공개사과 요구를 삼성 쪽이 계속 묵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 반이 넘었지만 아직도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방노동청도 삼성 쪽의 자료 공개 거부를 사실상 방조하면서 시간만 끌고 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은 일반인에게 통용되는 상식과 삼성에만 특별적용되는 ‘삼성식 상식’이 따로 존재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게 2007년 10월의 ‘삼성 비자금 사건’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특검 수사 결과 무려 4조5000억원의 차명자금을 은닉한 혐의 등이 확인됐는데도 조준웅 특검과 법원의 사려깊은 비호 속에 무사히 살아남았다. 일부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형 확정 넉달 만에 특별사면·복권돼 원래 모습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삼성이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월21일 이뤄진 이건희 회장의 ‘법원 기망 행위’와 관련된 검찰의 무혐의 결정도 삼성만의 특권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삼성에버랜드와 에스디에스에 대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회장은 1심 판결 직전인 2008년 7월 재판부에 ‘양형 참고자료’를 냈다. 배임의 유무죄 결과에 상관없이 두 회사 손실액 2508억원을 모두 변제하겠으니 선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재판 결과 배임액이 227억원으로 줄었다. 그러자 이 회장은 그 차액 2281억원을 다시 찾아갔다. 돈을 다 낼 테니 잘 봐달라고 해놓고 유리한 판결을 받자마자 안면을 바꾼 것이다. 검찰도 이 회장이 재판부를 속였다는 걸 사실상 인정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법원 판례’ 등을 들어 이 회장을 무혐의 처리했다. 일반인이 이런 짓을 했다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2월18일 김천지원의 판결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대구지법 김천지원 민사합의부(재판장 최월영)는 삼성식 상식을 뒤엎고 대단히 용감한 판결을 했다. 이건희 회장 등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음으로써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130여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판결이었음에도 원고 쪽조차 놀랄 정도였다. 재판부는 이 회장 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해 이재용 등 자식들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판시했을 뿐 아니라 배상액도 원고 쪽 요구를 거의 그대로 인정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삼성 사건을 판결한 판사들의 앞날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모처럼 삼성식 상식을 허물어뜨린 의미있는 판결이었다.

삼성의 특권 구조를 깨는 건 달걀로 바위 치기만큼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다. 김천지원 판결도 15년 전인 1996년에 일어난 일을 놓고 소액주주 3명과 경제개혁연대 등이 연대해 끈질긴 법정싸움을 벌인 끝에 겨우 얻어낸 결과다. 하지만 이런 판례들이 쌓이면 삼성만의 특권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고 김주현씨는 노조 없는 회사가 상식으로 돼 있는 삼성식 경영의 희생자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삼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고 억울한 죽음이 더는 없게 하려면 조그만 달걀이나마 계속 던지는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삼성에 장악된 공권력에 기대할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삼성 본사 앞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1인시위나 반올림(cafe.daum.net/samsunglabor) 같은 인권단체의 활동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지지가 더해지면 삼성만의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는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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