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03 20:00
수정 : 2011.03.03 20:00
|
정남기 논설위원
|
정남기 논설위원
서민금융을 하던 저축은행의 몸집이 갑자기 커진 것은 2006년이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아파트 붐이 일자 자금 운용처가 없던 저축은행들은 대박이 났다. 수익률이 높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게 그해 4월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다. 단순히 대출규제만 푼 게 아니다. 여신전문출장소라는 것을 신설해 피에프 대출을 더 확대하도록 부추겼다. 위험을 관리해야 할 금융당국이 거꾸로 위험을 키우는 쪽으로 갔다. 책임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누가 책임자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사실 책임론이 거론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 정부 부처나 금융계의 핵심 요직에 있다. 대출규제 완화를 위해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을 개정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를 보자. 당시 한덕수 장관은 주미대사로 나가 있고, 임영록 금융정책국장은 재경부 차관을 거쳐 케이비금융지주 사장, 주무였던 정은보 보험제도과장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을 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의 해결사를 자임하는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당시 재경부 차관보로서 사태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었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행령 개정은 재경부가 했지만 규제완화의 주요 내용을 입안한 곳은 금감위다.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입장이다.
경제부처 관료들의 엇나간 저축은행 정책은 대출규제 완화만이 아니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2005년 말부터 2006년 상반기에 걸쳐 영업권역 확대, 수표 발행 허용 등 갖은 방법으로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를 풀어줬다. 또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합병할 때마다 점포 수를 늘려주면서 저축은행의 몸집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물론 덩치가 커진 저축은행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던 피에프 대출에 더욱 매달렸다.
중요한 것은 당시 부동산 거품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는 점이다.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이 거품 붕괴 가능성을 경고했다. 김석동 위원장 역시 “부동산 시장이 버블의 저변에 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유독 저축은행에 대해서만은 완화 정책으로 일관했다. 왜 그랬을까? 2006년 초 금감원 자료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고위험 여신으로 분류되는 피에프 대출의 경우 규모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건전성이 제고되는 등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 앞으로 여신 건전성은 우량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완화 추세에 따라 더욱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험하지만 수익률이 좋기 때문에 대출을 늘리면 건전성이 더 좋아질 것이란 얘기다. 정말 한심한 발상이다. 부동산 거품에 기대 실적을 올리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저축은행이 온전할 까닭이 없다.
사실 당시 정부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국내에 홍콩 같은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계획은 거창했다. 2007년 금융허브 기반을 조성하고, 2012년 특화 금융허브를 완성하며, 2020년 아시아 3대 금융허브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것도 성에 안 찼는지 나중엔 목표를 5년이나 앞당겼다. 그리고 모든 경제부처가 동원됐다. 지금 생각하면 참 딱한 노릇이다. 저축은행 하나 관리할 능력도 없으면서 국제 금융허브를 만들겠다고 휘젓고 다녔으니 성과가 있을 리 없다.
위험관리는 금융의 처음이자 끝이다. 금융산업이 성장하려면 그만한 위험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게 금융산업의 경쟁력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금융당국이 기초적인 위험관리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게다가 사고를 쳐도 책임을 묻는 장치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정부 당국자들은 금융기관 대형화와 세계적인 투자은행만 외쳐대고 있다.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정말 금융강국을 원한다면 기본으로 돌아가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부터 묻는 게 순서일 것이다.
jnamki@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