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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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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수 모바일 에디터
얼마 전 동료가 의견을 물어왔다. 어떤 사람이 과거 온라인 뉴스의 기사를 지워달라고 요청해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5년 전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납품했다가 적발된 업체 사람이었다. 이미 벌금도 물고 법적 대가를 모두 치렀는데, 지금도 인터넷 검색창에서 과거 비리가 검색되어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더 들어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해인가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1심의 유죄판결 기사가 온라인에 떠돌아다녀서 낯을 들고 다니기 어렵다는 사람의 하소연도 들었다고 한다. 압축하면 법적 책임을 다했거나 책임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그 사건이 거론되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는 것이다. 정보매체의 변화는 언론에도 새로운 규범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과거 종이매체 시대에는 없던 일들이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정보를 찾기 위해 일부러 도서관이나 신문사의 산더미 같은 자료를 뒤져보는 수고를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많은 정보를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얻을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사생활 보호(프라이버시)는 거칠게 말하면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격리될 권리다. 애초부터 대중매체 발전의 대항 개념이다. 19세기 서구사회에 신문이 출현하면서 개인의 사생활이 대중에 무작위적으로 노출되는 폐해가 나타나면서 생겨난 것이다. 태생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제 정보는 그때보다도 훨씬 시간적·공간적 제약에서 자유롭다. 비트에 실려 언제든 검색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 규범이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는 당연해 보인다. 한때의 잘못을 평생 ‘주홍글씨’처럼 달고 살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항변은 타당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판결문 같은 공공기관의 공적 행위를 보도한 것이라면 단순한 사적 기록이 아니지 않은가? 있었던 사실을 없었던 일로 해달라는 것인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역사 왜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논란이 우리만의 일은 아닌 모양이다. 1990년 독일에서 발터 제들마이어라는 배우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볼프강 베를레와 만프레트 라우버가 범인으로 밝혀져 15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이들은 출소 뒤 위키피디아에 이 사건과 관련된 항목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지워줄 것을 요구했다. 독일 법정은 2008년 1월 이들의 손을 들어줬고, 위키피디아 독일어판에서 이들의 이름은 사라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운영되는 위키피디아 영어판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들어 요구를 거절했다.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를 둘러싼 두 나라의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실 온라인 정보의 인권침해 우려는 범죄적인 개인정보 유출이나 언론보도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사이버 세계를 여행하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 아닌가? 여기저기 남긴 단편적인 정보들이 어느 날 자신의 목을 죌 올가미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는 새로울 것도 없다. 인기 그룹 투피엠(2PM)의 멤버 박재범은 과거 마이스페이스에 남긴 글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하지 않았는가? 유럽은 사생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더는 적법한 목적에 사용되지 않는 정보가 온라인에서 처리되고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도입할 예정이라는 것이다.그렇다고 논란이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 어디까지를 보호 대상이 되는 사적 정보로 규정하고 그 판단을 누가 할 것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검열의 합법화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는 것 같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한다. 이 문제는 어쩌면 단순한 사생활 보호 문제를 넘어선 고차방정식일지 모른다. 우리는 어떤 해법을 준비하고 있는가?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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