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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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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국가정보원 전재만 1차장과 이종명 3차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한 말이다. 그러면서 “신속히 조직을 장악하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프로’ 발언은 덕담이 아니다. 속에 뼈가 있는, 일종의 경고다. 그럴 만도 하다. 엠비정부가 들어서고 특히 2009년 2월 원세훈 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은 줄줄이 사고를 쳤다. 한 해 동안만 돌이켜봐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2월16일)을 비롯해 리비아 주재 직원의 간첩 혐의 추방(2010년 6월),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미행(2010년 5월) 등 체면을 구긴 사건이 한둘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은 이 대통령이 공을 들인 국산 고등훈련기(T-50)의 수출에 먹구름까지 끼게 했다. 그렇다고 북한에 능통했던 것도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나 핵실험 전망 등 굵직한 사안에서 헛다리를 짚었다. 대통령으로선 국정원의 환골탈태가 절실했음 직하다.
하지만 ‘프로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무색하게, 이 대통령은 틀린 처방전을 내놓은 것 같다. 1·3차장이 교체된 뒤 국정원 바깥에선 ‘아마추어 수뇌부’라는 뒷말이 무성하다. 정보분야의 한 전직 고위관리는 “국정원 꼴이 우습다”고 혹평했다.
원세훈 원장과 국정원 ‘빅4’인 기획조정실장, 1·2·3차장의 면면을 보면 이런 지적이 가혹해 보이지 않는다. 원 원장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행정1부시장을 지낸 대표적인 행정관료이지만, 원장직이 워낙 정치적인 자리인 만큼 논외로 치자. 우선 목영만 기조실장은 서울시에서 과장·국장을 하며 원 원장을 모신 ‘서울시청 라인’으로, 원 원장이 2008년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되자 행안부로 따라갔다. 이어 2009년 9월엔 다시 국정원으로 옮겨왔다. 원 원장과는 ‘바늘과 실’ 사이이나 국정원 업무엔 ‘문외한’이다.
국내 정보 및 안보수사 등을 맡는 민병환 2차장의 경우 그나마 국정원에서 10여년 일했지만 소관 업무와 거리가 멀어 정보분야 비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해외·대북 분석 담당인 전재만 1차장은 외교통상부에 30년가량 몸담다 2009년 국정원으로 옮긴 직업외교관 출신이다.
이종명 3차장 역시 담당인 대북 공작 및 과학·산업·방첩 업무와 거리가 멀다. 그는 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전력발전부장 등을 거친 현역 군인으로, 그나마 지난 1월부터 민군심리전부장을 한 것이 담당 업무와의 끈이라면 끈이다. 하지만 3차장의 핵심 업무인 비밀공작이나 과학·산업·방첩 분야에선 사실상 문외한이다. 특히 3차장의 경우 오랜 경험이 필요한 대북 공작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내부 인사가 임명돼온 관행마저 깨졌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3차장을 거쳐 간 김보현·최준택·서훈·한기범·최종흡씨 등은 오랫동안 북한 관련 핵심 업무를 맡았던 북한통들이다. 북한을 화해·협력의 관점에서 보든 적대적 관점에서 보든 3차장직은 첩보와 공작, 정보의 전문성이 없으면 곤란한 자리다.
이 대통령이 걱정한 국정원의 아마추어화는 다른 데서 원인을 찾는 것이 옳다. 과도한 ‘정치 줄서기’ 같은 그릇된 행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몇 차례 대선 때 국정원 내부가 유력후보별로 갈려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건 감출 얘기도 못 된다. 선거 뒤 논공행상과 새 원장의 조직 장악을 위한 인사 태풍이 몰아쳤고, 그 와중에 전문성 있는 인사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게 국정원 안팎의 일치된 지적이다.
국정원이 앞으로 ‘프로’로 탈바꿈할지, 아니면 ‘아마추어’의 오명을 되풀이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수뇌부에 정보·북한통 한 사람 없는 국정원의 앞날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외교·통일 분야의 한 전직 장관은 “국정원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라며 국정원 내부의 침체를 걱정했다. 프로가 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국정원이 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jjk@hani.co.kr
정재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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