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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17 20:25 수정 : 2011.05.18 13:56

김종구 논설위원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 있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젊은 피!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젊은 피들의 연대는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 있다. 당의 역사를 바꿀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4·27 재보궐선거 이후 한나라당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청춘예찬이다.

한나라당의 젊은 피 득세는 7월4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젊은 대표론’이 거론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한나라당에 젊은 대표가 탄생하면,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가 올 것인가. 심근경색 상태에 이른 노쇠한 보수정당에도 다시 젊음은 소생하는가.

당내 구세력은 쇄신파의 움직임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다. “당의 혁신보다는 당권을 잡기 위한 권력투쟁”이라느니 “당의 위기상황을 이용해 정치적 입지 모색에만 골몰한다”는 등의 공격이 무성하다. 해체 위기에 놓인 기존 권력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이런 따위의 비판은 일단 무시하자. 그럼에도 한나라당의 젊은 피 돌풍에 마냥 박수를 보내기에는 뭔가 꺼림칙하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이런 헌사를 한나라당의 청춘들한테도 바칠 수 있을까. 그들은 기득권에 안주한 나머지 감동에 무디어졌고, 관행에 물들어 초심을 잃었으며, 착목하는 지점이 짧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며, 피는 차갑게 식어 현실도피만을 일삼아온 것은 아닌가.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소장파들은 쇄신과 변화를 외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다 바른말’ ‘약간의 개혁성 과시’ 정도에 머물렀다. 본질적으로는 현 정권 출범 이후 계속돼온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독선적 국정운영, 언론 장악, 대결적 대북정책, 가진 자 위주의 정책에 침묵과 동조로 일관했다.

4·27 재보선 이후 쇄신파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의원들의 과거 발언록을 보자. “참여정부 때 집회 불허 건수가 더 많았는데 현 정부가 모든 걸 원천봉쇄하고 억압하는 양 오해를 받아 안타깝다.”(나경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과연 나을 것이 있는지 묻고 싶다.”(구상찬)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소속 교원 명단 공개 취지에 공감해 동참하며 끝까지 함께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정두언·정태근·구상찬) … 이런 식의 발언은 지난 3년간 무수히 많다.

쇄신파는 뒤늦게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책적 차별화를 선언하는 등 대립각을 세우고 나섰다. “개량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며 사회적 불평등 구조의 타파와 양극화 해소 등의 기치도 내걸었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몸부림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들의 뒤늦은 용기를 칭찬해주기에는 그동안 쌓은 업보가 너무 많아 보인다. 자신들의 침묵과 동조, 잘못된 판단과 행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반성 없이 다른 곳을 향해서만 손가락질하는 가벼운 처신도 썩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개량과 근본적 변화를 가르는 경계가 무엇인지도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이들의 정치적 행보가 사실은 ‘박근혜 역할론’에 기울어 있는 것도 이해타산에 밝은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진행되는 ‘소장파+친박 연대’는 박 의원의 대중적 인기에 기대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는 소장파의 계산과, 지지기반이 취약한 수도권에서 세력을 확보하려는 친박 쪽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이다.


젊은 피도 좋고, 쇄신의 몸부림도 좋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청춘들이여, 먼저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들어보라. 이성의 찬란한 별빛 속에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소리가 울리는지를.

kjg@hani.co.kr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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