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구 논설위원
|
소극적인 오프사이드 전략은
자칫 허망하게 골을 내줄 위험도 있다
홍준표 새 한나라당 대표의 거침없고 화끈한 화법은 정평이 나 있다. 몇 달 전 사석에서 만났을 때 당내 몇몇 인사들에 대해 내린 평가도 무척 직설적이었다. “한국의 룰라가 돼야 하는데 스탠스를 잘못 잡았다. 그러다 보니 보수는 의심하고 진보는 배신자로 여긴다”(김문수 경기지사), “서울시의회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게 무슨 리더십이냐. 그러면서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건가”(오세훈 서울시장).홍 대표가 전당대회 선거운동 기간에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찬성 입장을 보인 것은 그래서 다소 뜻밖이었다. 게다가 홍 대표는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오 시장을 밀었다며 아직도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자신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지 않은 것과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청와대가 당대표로 안상수 의원을 민 것까지 묶어 “세 번의 배신”으로 표현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홍 대표는 전당대회가 끝난 뒤 “무상급식 저지 주민투표를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홍 대표의 ‘오 일병 구하기’ 행보는 약간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오세훈 시장 ‘대권 프로젝트’ 성격의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친박 진영은 물론이고 당내 소장파들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 대표로서는 이런 당내 반발 기류를 뚫고 원만히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동반책임까지 져야 한다. 주민투표가 유효투표율(33.3%)에 미달해 무산되거나 또는 패배할 경우 홍 대표가 받게 될 정치적 타격은 오 시장 못지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정이 다급해진 것은 오히려 야당 쪽인 것 같다. 판이 점차 커지는데도 이렇다 할 뚜렷한 전략을 내놓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의 주민투표 추진 과정을 돌아보면 진보시민단체 진영이나 야당은 오 시장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 처음 주민투표 추진 방침이 나왔을 때 “발의 숫자나 제대로 채우겠는가”라고 코웃음을 쳤으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가만히 놓아두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달리 ‘얼레 얼레’ 하다가 이제는 한나라당이 거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야당이나 시민단체 쪽이 지적하는 주민투표의 부당성이나 불합리성은 백번 지당한 말이다. 무상급식 문제가 주민투표 대상이 되는지부터 의문인데다, 182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굳이 이런 투표를 강행할 필요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다. 하지만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나버린 양상이다.
주민투표를 피할 수 없는 게 현실로 굳어진 이상 야당은 지금처럼 계속 어정쩡한 전략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어차피 이번 주민투표는 무상급식 전면 실시냐 단계적 실시냐를 가리자는 수준을 넘어섰다. 오세훈 시장에 대한 중간평가를 포함해 매우 복잡한 성격의 투표가 돼버렸다. 서울시의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를 비롯해 무상급식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공세로 전환하는 등 좀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처럼 말뿐인 투표 보이콧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오프사이드 전략’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힘도 제대로 한번 써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골을 내줄 가능성이 크다. ‘투표 안하기 운동’을 하려거든 제대로 해야지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는 소극적·수세적 방식은 곤란하다.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든 그것은 야당의 몫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다. 야당이 훗날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을 쓰는 일이 없기 바란다. kjg@hani.co.kr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