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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1 19:09 수정 : 2011.07.21 19:09

한승동 논설위원

미국 험담 좀 늘어놨다고 발끈해서,
최대 교역상대국이자 사활적 안보
관련국을 합창하듯 힐난하는 나라

“북한에 대해 예측 가능한 단 한가지 사실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서울에 온 마이클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지난 14일 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도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그랬다. 늘 들어온 얘기다. 북한은 예측 불허라는 게 북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라고 단언해 놓고는, 김정일은 계속 도발할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이런 자가당착적 화법 역시 새삼스러울 게 없다. 진실은, 멀린이 옳거나 거짓말을 했거나 무지몽매하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북한과 그 지도자가 도무지 예측 불가능하다고? 아니다. 북한만큼 예측 가능한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나? 지도자가 단 두명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부자지간인데다 소속 당도 같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무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을 줄기차게 연구해오지 않았나. 각기 생각이 다르고 하는 말도 다른 대통령이 10명이나 등장한 남쪽과 비교해 보라. 어느 쪽이 더 예측 가능한지.”

3년 반 전 이명박 정권 출범 두달 뒤 오스트리아 빈대학 동아시아경제사회 담당 뤼디거 프랑크 교수가 한 얘기다. 그는 그 시절에 이미 지금의 남북관계를 다음처럼 기막히게 예측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북이 도발적인 레토릭(수사)과 함께 거칠게 대응하리라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고, 북은 예측대로 했다. 남북은 티격태격 실속 없이 시간과 자원만 낭비할 것이다. 햇볕정책은 바로 그런 한심한 짓거리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남북은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처음으로 외세가 좌우해온 오랜 전통을 끝장낼 기회를 맞는 듯했다. 그런데 다시 과거로 돌아갈 모양이다. 하지만 평양은 그런 압박에 굴복한 적이 없다. 실용주의란 본디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처하는 것이다. 햇볕정책은 감성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겉모습을 띠고 있으나 실은 아주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방식이다. 반세기 동안 실패해온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건 전혀 참신하지도 실용적이지도 않다. 그거야말로 이상주의적이고 몰역사적인 처사다.

한국이 빠져나간 자리를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할 것이다. 북은 미국에 손짓할 것이며, 한국은 북에 대해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나중에 여론에 밀리거나 정략상 다시 유화책으로 선회한다면 얼마나 큰 낭비냐.

프랑크의 예언대로 이명박 정권은 3년 반을 낭비한 뒤 방향을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멀린의 얘기가 보도된 바로 그날 한국 유력지들은 김관진 국방장관-천빙더 중국군 총참모장 회동 얘기를 이례적으로 1면 머리에 실었다. 모두 미국의 패권적 행태를 꼬집은 천의 발언을 ‘외교적 결례’나 ‘미국 맹비난’으로 몰았다. “무례한 중국”이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장관보다 급이 낮은 총참모장이 응대해서 무례했나? 차관보급이 휘젓고 다니는 미국에 대해 아무 말 않는 걸로 봐 그건 아닐 것이다. 동맹국이 듣기 거북한 얘길 해서? 그 정도 얘기는 대만, 인권 문제 등 다른 현안 관련 발언과 견줘봐도 별것 아니다. 아니면 그냥 ‘감히 우리 미국’을 비난했기 때문인가. 그래서 ‘꼬붕’처럼 쪼르르 고자질하듯 한 것인가. 설사 중국 쪽 언사가 결례일지라도 그건 주변국들 이해가 얽힌, 우리가 주시하고 활용해야 할 흥미로운 외교사안이지 욕하거나 고자질할 일은 아니다.

정작 미국, 일본은 중국을 한편으론 견제하고 한편으론 거래하면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본회담 전에 별것도 아닌 미국 험담 좀 늘어놓았다고 발끈해서, 좋든 싫든 우리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자 사활적 안보 관련국을 합창하듯 힐난하는 나라. 예측하기 힘든 나라가 아닐까.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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