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5 19:10
수정 : 2011.09.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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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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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거론한 인권은 ‘북한 인권’이
거의 유일하고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일색이다
안철수 돌풍이 밀어닥친 뒤 박근혜 의원 진영에서 나온 반응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박 의원 본인의 “병 걸리셨어요” 발언이지만 이한구 의원의 ‘친노 음모론’도 이에 못지않다. 친박 진영이 ‘친노 좌파’ ‘음모’ 등의 용어를 너무나 쉽게 쓰기 시작한 점도 흥미롭고, 박 의원 측근 중 가장 야무지고 논리정연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아온 이한구 의원이 ‘오버’를 하고 나선 점도 눈길을 끈다.
친박계의 이런 히스테리 섞인 반응은 이들의 내공의 깊이나 이념 문제를 대하는 태도, 좌파에 대한 평소의 인식 등을 잘 보여준다. 그동안의 차분하고 쿨한 태도는 대적할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의 느긋함이었을 뿐 기존의 우월적 지위가 위협받는 순간 언제든 태도가 돌변할 수 있음을 실증한 셈이다.
박근혜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만 해도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후보에 비해 확실한 강경 우파로 자리매김됐다. “다음 대의 시대정신은 좌파의 포로가 된 세력이나 우파의 포로가 된 박근혜와 같은 이념 갈등의 시대는 아니다”라고 일갈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금의 한나라당 대표인 홍준표 의원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박 의원은 이 대통령과는 반대로 좌우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 결과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그는 여당이면서도 야당으로 인식되는 착시 현상을 빚었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움직임은 이런 기류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철수 돌풍을 계기로 박 의원이 딛고 서 있는 기본 토대가 어디인지가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보수진영에서는 “내년 대선은 결국 ‘범좌파 대 박근혜’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박 의원의 전투의지를 부추기고 있다.
박 의원의 그동안 발언록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지역 표심’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결코 침묵 모드를 지키지 않았다.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문제 등에서 그는 확실한 의사표현으로 해당 지역 민심 획득과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했다. 복지와 남북관계 등 국가적 주요 과제와 정책도 마찬가지다. 모두 이념적 외연을 넓히고 현 정부와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유난히 그가 입도 뻥긋하지 않는 대목이 있다. 바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다. 공권력의 남용, 언론 통제, 권력기관들의 정치도구화 등 역사의 역류 현상에 대해서는 신기하게도 오불관언의 태도다. 현 정부 들어 일어난 최대의 비극적 사건인 용산참사에 대해 그가 공식적으로 한 말이라고는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자”는 게 유일했다. 박 의원의 이런 침묵은 그 자신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거나 이 대목에서만큼은 이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인터넷에서 ‘박근혜 인권’ ‘박근혜 민주주의’ 등을 함께 넣어 검색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인권에 대해서는 ‘북한 인권’을 거론한 것이 거의 유일하고,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근본 뿌리인데 국가 정체성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대부분이다.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한 그의 주된 관심영역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철수 교수는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며 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의 대상에 박 의원이 포함되느냐 않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고, 안 교수의 말 자체가 결코 진리도 아니다. 하지만 박 의원이 그동안 해온 말과 침묵의 행간을 살펴보면 ‘박근혜와 역사의 물결’에 대한 질문의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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