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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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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뚱어리와 주변에서 위선과
음모술수가 넘쳐나는데 근엄한 척
군기를 잡는 권력에 하이킥을 날린다
‘빵꾸똥꾸!’
지난 2009~2010년 큰 인기를 끈 말이다. <문화방송>의 일일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열 살짜리 꼬마 정해리가 입에 달고 다녔다. 당돌하고 이기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호불호가 명료한 해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겐 어김없이 ‘빵꾸똥꾸’(방귀똥꼬)를 날렸다.
‘빵꾸똥꾸’의 유명세에는 엉뚱하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한몫을 했다. 방통심의위는 2009년 12월 “해리가 어른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사용하고 장기간 반복적으로 묘사된다”며 방송법에 위배된다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빵꾸똥꾸’를 외치고 프로그램의 시청률만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제 몸뚱어리와 주변에서 위선과 거짓, 음모와 술수가 넘쳐나는데 근엄한 척 군기를 잡는 권력에 냉소한 때문이다. 쪼잔하고 허접한 권력에 대한 분노다.
한번 혼쭐이 났으니 철이 들 만도 한데, 방통심의위는 또 칼을 빼들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인기 최고인 문화방송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다. 방통심의위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과도한 고성과 저속한 표현”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방통심의위 소위원회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경고’ 의견을 낸 바 있다. 무한도전 멤버인 하하가 ‘겁나 좋잖아! 뻥쟁이들아’라고 소리지르는 모습, 출연자들이 벌칙으로 엉덩이를 때리고, 이때 등장하는 ‘쫘악’이라는 자막 등이 문제란다.
참 집요하고 대단하다. ‘심의위원회’라는 이름을 확인시키겠다는 맹목적인 신념,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도덕 교과서 잣대를 들이대는 ‘무모한 도전’(무한도전이 아니다) 정신이 놀라울 뿐이다.
방통심의위는 출연자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자막 표현 하나하나에만 신경을 쓴다. 이 말과 행동들이 모여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프로그램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땅꼬마’라는 별칭을 지닌 하하가 ‘100분 토론’에 나오는 대학교수나 국회의원의 말짓을 한다면 6년 이상 인기를 끌어온 이 예능 프로그램의 존립이 가능했을까? 제 몫이 늘 우선이고 툭하면 고함질인데도 밉지 않은 박명수나, 어눌함을 아예 대놓고 내세우는 정준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뭔가 부족하고 어리숙한 인물들의 좌충우돌과 끈기, 그 속에서 은연중 드러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연대가 ‘무한도전’의 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방통심의위 행태에선 권위와 도덕성을 잃은 권력의 억지가 떠오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라 꼴이 엉망이니 비웃음이나 풍자를 수용할 여유가 없다. 걸핏하면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로 받아들이고, 무조건 “안 돼” 하며 입막음하려 든다. 자신은 우화 속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엄숙함과 도덕을 강요한다. 가사에 ‘술’이 들어가는 노래에 무차별적으로 ‘19금’ 딱지를 붙인 여성가족부와 ‘무한도전’ 심의에 나선 방통심의위의 뇌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하지만 엉뚱한 트집 잡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9년 10월 방송인 김제동씨의 퇴출이 분명한 본보기다. 당시 <한국방송>은 정치적 외압 논란 속에 그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고, 국민들은 자신들의 ‘무기’로 분노를 표시했다. 그해 10·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고, 김씨의 퇴출은 두고두고 중요한 감표 요인으로 꼽혔다.
방통심의위가 ‘무한도전’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쪼잔한 권력에 대한 응징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게다. 공교롭게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한달도 남지 않았다. 투표장으로 달려가 하이킥을 날려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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