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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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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제 결말이 나야 하며
관객이자 조연이 된 우리는
비극을 바라지 않는다
해체주의 예술작품이라는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에서 어제 부산영화제가 개막했다. 영화의 전당은 길이 163m, 너비 62m, 무게 4000t의 세계 최대 지붕을 기적에 가깝게 구현한 명물이라고 한다. 영화의 전당은 한진중공업에서 지었다.부산시는 영화제 기간에 희망버스는 오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영화인들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아 영화 놀이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월가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번지고 있는 ‘점령하라’ 시위를 기록하거나 영화로 만들고 싶은 감독은 멀리 갈 필요가 없다. 부산 영도조선소만한 로케이션 장소가 없을 것이다.
35m 높이 크레인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고공시위를 벌인 지 275일이 지났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의 영화는 이제 결말이 나야 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지 부당한 정리해고를 되돌리라는 것이다. 벼랑 끝에 선 그는 더 물러날 데가 없다.
그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서 노조운동을 하다가 해고됐지만 2009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부당하게 해고된 당사자가 자신과 동료들의 복직을 주장하는데 어떻게 제3자냐고 묻는다. 한진중공업이 긴박하지 않은 경영상의 이유로 지난해 말 몇백명을 정리해고하자 그는 동료들의 복직에 목숨을 걸었다.
필름을 앞으로 돌려보면 조선소 첫 여성 용접사로 험한 일을 하기 전에 그는 버스안내양을 했으며 해고된 뒤에는 제빵공장 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먹고살기 위해, 더 배우기 위해 일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어용노조의 비리를 지적하고 죽거나 다친 노동자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봄이 오면 삼랑진 딸기밭에 가고 싶고, 크레인을 마징가 제트로 개조하고 싶다고 한다.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노동자다. 노동자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가 내려와선 안 된다, 그를 내려보내선 안 된다는 음지의 세력도 있다. 그의 고공시위는 겨울바람을 가를 수도 있고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영화의 관객이자 조연이 된 우리는 그런 일을 바라지 않는다.
그리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테베의 왕 크레온은 소녀 안티고네와 대립한다. 크레온이 모욕을 주기 위해 죽은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지만 안티고네는 인간적으로 그럴 수 없다며 매장을 한다. 크레온은 국법으로, 안티고네는 신법으로 대립한다. 얼마든지 타협의 여지가 있음에도 둘은 미련하게 평행선을 긋고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크레온은 인민들의 뜻을 따르지 않은 독재자로 권위를 잃고 파멸하고, 안티고네는 명예롭게 ‘산 채로 하데스로’ 간다. 안티고네가 비극으로 끝난 까닭은 크레온의 자기성찰이 없고, 사건의 암시자 노릇을 하는 코러스가 있지만 중재자는 없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7월 군함 2척과 컨테이너선 4척을 수주했다고 한다. 중소형 컨테이너선과 특수선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가져 수주 전망도 밝다고 한다. 노조와 성실히 협의해 무리한 정리해고의 상처를 보듬는 게 도리다. 만에 하나 약자를 상대로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를 부린다면 2500년 된 안티고네의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자기성찰을 하게 하고 중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재벌의 생리로 봐서 조 회장 주변에는 없다. 이 점이 맹점이다.
따라서 중재자는 정치권, 그중에서도 집권당 대표가 돼야 한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막힌 것을 뚫는다며 개성도 갔다 왔는데 영도에 못 갈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 비극으로 끝난다면 상당부분 책임져야 한다. 나는 해피엔딩을 보고 싶다.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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