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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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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한테 미지의 길인 FTA에
대해 실체를 제대로 알리기보다
맹목적 지지를 강요하는 정부
기자는 글을 쓸 때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지침으로 삼는다.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적으라는 공자 말씀이다. 하지만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달만 하는 기자는 거의 없다. 보고 들은 것의 의미와 성격, 맥락 등을 파악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현실에선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내막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부가 객관적인 정보를 공개하기 꺼리는 사안일수록 더 그렇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 사례다.
2006년 3월6일 <한겨레>는 협상의 ‘4대 선결조건’을 처음으로 단독 보도했다. 미국이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약값 적정화 방안과 자동차 환경기준 강화안의 보류, 국산영화 의무상영제(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등을 내세우자 우리 정부가 이를 굴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근거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를 담당하던 송창석 기자가 김종훈 당시 협상 수석대표를 직접 만나 들은 말이었다.
보도의 파장은 컸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퍼주기부터 하느냐는 비판이 들끓었다. 곧바로 외교부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한겨레가 허위보도를 했기 때문에 정정보도를 내도록 조정해달라는 취지였다. 언론중재위에는 김종훈 대표가 직접 나왔다. 그는 송창석 기자가 자신의 말을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로서는 점잖게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송 기자가 김 대표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엠피3 플레이어를 틀었다. 한겨레가 아닌 통상교섭본부의 허위·날조 신청이 명백해지자 김 대표는 송 기자의 녹취행위를 문제삼으려다 언론중재위원들에게 꾸중(?)만 듣고 돌아갔다.
그 뒤에도 김종훈 대표는 4대 선결조건의 실체를 계속 부인했다. “4가지는 한-미 통상분쟁 현안이기 때문에 미국 쪽 얘기를 들어줬을 뿐이지 자유무역협정 협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4대 선결조건에 대한 진위공방은 한겨레 보도 뒤 6개월쯤 지나 청와대가 “4대 선결조건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발표하면서 결국 일단락됐다. 안타깝게도 4대 선결조건을 다 들어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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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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