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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8 19:35 수정 : 2012.02.28 19:35

오태규 논설위원

민주당이 한-미 에프티에이 폐기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통쾌하면서도 ‘그래도 되나’ 하는 우려였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문제들이 있다. 머리는 받아들이는데 가슴이 따라오지 않거나, 가슴은 용인하지만 머리는 부인하는 사안들이다. 내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런 경우다. 파고들수록 이성과 감성이 분리되어 제 갈 길을 달린다.

그 분열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끝에서 만나는 게 미국에 대한 태도, 즉 반미 문제다. 한국에서 반미 문제가 본격 표면화하게 된 계기는 광주민중항쟁이다. 이때 한국군의 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전두환의 진압군 출동을 방조해 유혈극의 원인을 제공했다. 한국의 대중은 그동안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 당시 앞장서 반독재운동을 이끌던 대학생들의 미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최근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한-미 에프티에이의 전면 재검토 아니면 폐기를 주장하는 편지를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했다. 이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통쾌하면서도 ‘이래도 되나’ 하는 우려였다. 역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과 보수언론이 말 바꾸기니 국격 훼손이니 하면서 융단폭격을 가했다. 한-미 에프티에이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고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당시 총리였다손 쳐도 세종시 등의 문제에서 오락가락했던 이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은 ‘노무현 에프티에이’와 ‘이명박 에프티에이’를 구별한다. 전자는 이익의 균형을 이뤘지만 후자는 균형이 깨졌다고 말한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로 노 정부 때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논리도 편다.

절대 없을 것이라던 추가협상이 진행돼 자동차 분야에서 추가로 양보를 해준 것은 이명박 정부의 명백한 잘못이다. 국제경제 환경도 협상 초기와는 달라졌다. 따라서 이런 차이와 변화를 근거로 일부 수정을 위한 재협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면 재협상 또는 폐기를 운운하는 것은 침소봉대다. 마치 꼬리로 머리를 부인하는 꼴이다. 이러니 총선을 앞두고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반미 정서를 활용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하다.

일부에선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이 과거에 한-미 에프티에이를 추진하고 찬성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미 에프티에이가 진정 맺어선 안 될 협정이라고 판단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다.

한데 한-미 에프티에이는 정말 먹어선 안 되는 독일까? 가장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되는 게 ‘투자자-국가 소송제’다. 반대 진영에선 ‘사법주권’을 유린할 뿐 아니라 한국을 미국의 경제식민지화할 수 있는 조항이라고 말한다. 협상이 발효되면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정부 쪽은 기우이며 너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반박한다. 이밖에도 역진 방지와 개방 방식에 대한 이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런 논란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전략으로 채택했던 ‘동시다발 에프티에이 전략’의 유효성을 훼손할 정도까지 되는지는 의문이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폐기하자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동시다발 에프티에이 전략의 폐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애초 유럽연합, 중국 등 거대 경제권과 에프티에이를 상정한 속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유독 한-미 에프티에이만 반대 목소리가 성한 것은 80년 광주의 상처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젠 진보진영도 ‘반미’의 늪에서 빠져나와 세상을 냉정하게 볼 때도 됐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 중 하나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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