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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0 19:14 수정 : 2012.05.10 19:14

정재권 논설위원

노동자가 평등과 공생, 연대의 가치를
놓아버리면 ‘생산하는 자’로서의
존귀함과 공동체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제 회사 쪽과 단체교섭 상견례를 했다지요? 지난해 11월 위원장에 당선된 뒤 첫 단체교섭이군요. 무엇보다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을 최우선 의제로 삼았다는 소식에 반가웠습니다.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과 임금인상 문제만도 결코 만만치 않을 텐데, ‘문용문 위원장이 역시 뚝심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한겨레> 5월1일치 12면)을 떠올렸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대부분 40~50대 이상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입니다.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는 그들의 행복감이 사진 밖으로 고스란히 전달돼 슬며시 웃음이 지어집니다. 4월30일 정규직으로 바뀐 서울시의 비정규직 직원들입니다. 비정규직의 멍에를 벗어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들의 환호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참 잘한 일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자랑스런 ‘맏형’에서 언제부터인가 ‘노동 귀족’으로 얼굴이 바뀐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제 모습을 찾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동일한 노동은 동일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상식의 확인이자, 위법 상태를 정상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잘린 최병승씨는 7년의 싸움 끝에 지난 2월 대법원에서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이라고 판정받은 데 이어, 5월 초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습니다. 대법원과 중노위의 판단은 최씨와 비슷한 취지의 소송을 진행중인 1900여명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물론이고 8000여명으로 추산되는 비정규직 전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그동안 비정규직을 동료라기보다는 정규직의 ‘안전판’ 정도로 여겨온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구제금융 사태와 대규모 정리해고를 겪은 뒤라고 해도 지난 2000년 “하청노동자는 정규직의 방패막이”라 주장하며 하청노동자 비율 16.9%를 유지한다는 ‘고용안정협약’을 맺은 것은 심했습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를 신규 인력 채용 때 우대한다는 노사합의까지 나왔습니다. 노동계 안팎에서 “현대차 노동운동은 끝났다”고 탄식할 만 했지요.

하지만 노동자가 평등과 공생, 연대의 가치를 놓아버리면 ‘생산하는 자’로서의 존귀함과 공동체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어집니다. 일시적으론 경제적 이익과 고용안정을 지켜낼지 모르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그저 현장의 부속품이나 다를 바 없어집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너무 한가한 얘기였나요? 다행히 올해 여건이 좋은 편이라 들었습니다. 정규직 조합원의 84%가 ‘노조 차원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찬성한 설문조사 결과도 있고, 회사 경영실적 역시 지난해에만 8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는 등 어느 때보다 좋습니다. 대법원의 판결과 서울시·강원도교육청 등의 정규직 전환에 보내는 박수도 든든한 ‘후원군’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섣부른 낙관은 하지 않겠습니다. 회사 쪽이 얘기하는 위기 국면에서의 노동 유연성 확보는 무시할 수 없는 고려사항입니다. 또 협상의 속성상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지요. 다만 협상 마지막까지 ‘정규직의 이해를 위해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겠다’는 원칙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협상이 끝나는 날 서울시 직원들처럼 환하게 웃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합니다. 진부하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은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소중한 깃발입니다. 갑자기 다가온 여름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길.

정재권 논설위원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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