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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07 19:23 수정 : 2012.06.07 19:23

정영무 논설위원

재벌개혁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은 인구 76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3만1000달러의 강소국이다. 한때 키부츠(집단농장)를 통해 평등사회를 지향했으나 대기업 중심의 급속한 산업화로 빈부격차가 커졌다. 2004년 이후 4.5%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물가 급등으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곤층은 4분의 1로 늘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서민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텐티파다(텐트를 치고 벌이는 인티파다 시위)에 참여한 시위대는 “경제가 극소수 부유한 가문과 기업에 집중돼 있고 성장의 열매를 독식하는 것은 그들”이라고 재벌 독점체제를 지목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래려고 전 재정부 총괄국장을 위원장으로 총리와 재정부 장관, 이스라엘은행장 등이 참여하는 경제집중위원회를 발족해 개혁안을 마련했다. 내각이 지난 4월 만장일치로 수용한 권고안은 금산 분리와 소유 제한 등 재벌 해체에 가까운 처방을 담고 있다. 재벌그룹은 12조5000억원 이상 금융회사와 매출액 1조8000억원 이상의 비금융회사를 함께 소유하지 못한다. 피라미드식 소유구조도 제한돼 기존 재벌은 상장 자회사의 자회사까지, 신규 재벌은 자회사만 허용된다. 대부분의 재벌그룹이 주력 금융회사나 제조업체를 처분하고 계열사를 크게 줄여야 할 처지다. 이사회, 감사위원회 등 내부 통제장치와 소수주주 권한도 크게 강화했다.

이스라엘은 몇몇 재벌그룹이 방대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국가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10대 대기업의 시가총액이 전체 상장기업의 41%를 차지하고, 6대 재벌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의 25%에 이른다. 이들은 정책자금과 특혜대출을 지원받고 국영기업을 싼값에 사들여 덩치를 불리기도 했다.

“이 집과 이웃집 모두 같은 대기업에서 지은 것이고, 보험이나 휴대전화와 인터넷서비스도 같은 회사가 제공한다. 냉장고 역시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사온 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집에서 보는 신문도, 재테크를 위해 이용하는 금융업체도 같은 재벌의 계열사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묘사한 이스라엘 여느 가정은 한국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사회보장 시스템이 취약한 것도 우리와 닮았다. 재벌기업들은 자회사를 매각하면 결국 외국인 손에 넘어갈 것이라며 반발하지만 봇물 터진 텐티파다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개혁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총선에 이어 대선에도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최대 화두가 될 것이다. 여야가 한입으로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공정 경쟁과 경제력 집중으로 방점을 달리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총수지배체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재벌개혁론부터 투기자본과 주주자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재벌활용론도 나온다.

재벌기업에서 일했던 적지 않은 이들은 최측근 경영자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첫째 충성심, 둘째 헌금 능력을 꼽는다. 총수와 그 일족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기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핵심으로 갈수록 경영성과는 큰 변수가 아니라고 한다. 조폭이나 사이비종교집단의 운영원리와 다를 바 없는 충성과 시혜의 음습한 지배구조가 반칙과 특권을 낳고 있다.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않은 총수가 전횡을 하고 책임을 수하에게 미룰 수 있기에 빚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 불공정 거래도 중요하지만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손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의 기본질서를 해칠 뿐 아니라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말대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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