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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01 19:15 수정 : 2013.01.02 17:56

오태규 논설위원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첫날 일정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대사 면담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 상대였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전화 통화는 그 뒤였다. 누가 봐도 돋보이는 4강 중시 행보다.

이런 일은 5년 전 이명박 대통령과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 때도 시차만 다를 뿐 그대로였다. 노 대통령 이후 모든 당선인은 예외 없이 첫날 미국 대사를 만났다. 중국·일본·러시아 대사와도 수일 안에 면담을 했다. 다른 나라 대사들은 얼씬도 못했다. 박 당선인의 경우 특이한 점은 이전과 달리 중국과 일본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이 정권 때 소홀했던 중국을 중시하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일 것이다.

이런 관례에 따른다면, 4강 외교의 다음 단계는 당선인의 4강국 특사 파견이다. 이전 두 대통령도 그랬다는 것만큼 강력한 명분도 없다. 특사 파견은 외교 성과를 떠나 당선인에겐 선거 공신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특사에겐 인정받았다는 자존감을 줄 수 있는 일거양득의 방안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 때는 정대철씨가 미국·일본, 이해찬씨가 중국, 조순형씨가 러시아 특사로 파견됐다. 이 대통령 시절엔 정몽준, 이상득, 이재오씨가 미국, 일본, 러시아 특사를 맡았다. 당시 박 당선인은 중국 특사로 활약했다. 면면을 보면, 외교 성과를 올리겠다는 것보다 선거 공신에 대한 보답이나 유력 정치인에 대한 배려의 냄새가 물씬 난다.

대통령 당선인이 첫날부터 부랴부랴 4강국 대사를 만나고 취임도 하기 전에 4강국에 특사를 보내는 이유는 미·중·일·러 4개국이 한반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가 평화와 안정 속에서 발전하고, 통일을 이루려면 이들 나라의 협조와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들과 우호관계를 잘 다져놓자는 발상 자체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이런 관행이 과연 효과적인지는 의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지, 나라의 품격과 국민의 자존심만 해치는 ‘무개념 관례’는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사는 접근도 못하는데 사대주의적 과공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4개국 외의 다른 나라들은 모두 ‘졸이란 말이냐’는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

중요한 건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파견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상대에게 전할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는 일이다. 우리의 생각이 굳어지기도 전에 섣불리 상대를 만나면 혼란된 메시지를 줄 가능성이 크다. 상대의 이해관계가 우리 쪽에 투영되기도 쉽다. 어느 쪽이든 국익에 마이너스다. 이런 점에서 박 당선인이 첫날 일정을 4강 대사 면담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인수위 50여일은 선거용 초벌구이에 불과한 외교정책 공약을 대통령으로서 곧 마주할 실전 상황에 맞게 정비할 수 있는 황금과 같은 시간이다. 그 기간에 야당, 정부, 학계 등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며 임기 5년 내내 흔들리지 않고 추진할 외교정책의 뼈대와 가닥을 잡아야 한다.

특사 파견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굳이 당선인 신분으로 특사 파견을 해야 한다면, 4강국에 일률적으로 보내는 관행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대응하는 게 옳다.

대통령도 아닌 당선인 특사가 전략적 그림도 없이 상대국을 방문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중국 특사를 경험했던 박 당선인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4강 대사 면담은 이미 지나갔지만, 4강 특사는 아직 남아 있다.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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