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8 19:23
수정 : 2013.01.0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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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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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서울에서 ‘희망버스’를 탔다.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가 철탑농성을 벌이고 있는 울산을 거쳐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가 목을 맨 부산으로 가는 여정이다. 명색이 노동 분야 담당 논설위원인데도 지난 2년 동안 4차례의 희망버스에 한번도 함께하지 못했다. 어떤 부채감이 길을 나서게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몸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더 컸다. 18대 대선 뒤 절망과 탄식의 홍수 속에서 물에 적셔진 솜처럼 처진 마음과 실타래처럼 엉킨 머릿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 맞서 소리치고 내달리고 싶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의 손에 이끌려 6호차에 올랐다. 개인 참가자들을 위한 차량이라 대부분이 서로 초면이다. 왜 이들은 희망버스에 올랐을까.
“갓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백수 신세다. 희망차고 행복하고 싶은데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힘들다. 누구와 함께 살아갈지 고민이다.”(이미지)
“대선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할 때, 살아가면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 소식을 들었다. 그들에겐 가느다란 희망이 끊어지는 일이었다. 좀더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느꼈다.”(재벌기업 회사원)
“도저히 안 되겠더라. 아이들에게 뭘 알려주고 얘기해줄 수 있을까. 작은 물방울이 모여 내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김포의 주부)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에 희망을 주러 갔다가 희망을 얻고 왔다. 야만적 사회가 바뀌길 바랐는데 상상한 것보다 끔찍한 세상이 올 것 같다. 함께 버티고 희망을 얻자. 철탑을 향해 웃고 오자.”(김형준 서울지하철 노동자)
다르지 않았다. 서로 기대고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사는 세상으로 한발짝이라도 나아가고픈 마음들이었다. 천의봉씨가 농성 81일 동안 써온 일기를 읽으며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내비쳤을 때 마음속으로 같이 울었다. 최병승씨가 “힘듭니다. 춥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싶고, 내려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라며 결의를 다졌을 때 강철보다 단단한 인간의 의지에 감동했다. 두 사람이 환히 웃으며 울산으로 달려온 이들에게 연대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하트’를 그렸을 땐 끝내 이기고야 말 노동자들의 모습에 뿌듯해했다.
부산의 바닷바람은 맵찼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춥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정리해고 뒤 2년 동안 힘들게 생활하다 복직 3시간 만에 강제휴업으로 내동댕이쳐졌던 최강서씨의 고통이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일 게다. 길바닥에 둥글게 앉아 국밥의 온기를 나누며, 서늘한 분노를 곱씹었다. 최씨의 부인 이선화씨가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아이 아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을 때 분노는 굳센 다짐이 됐다.
돌아오는 길, 누군가 ‘6호차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금세 연락처가 모였다. 1월25일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금요 촛불문화제 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잡았다. 희망버스가 출발지인 대한문에 도착한 6일 새벽 4시30분, 지하철이 운행을 시작하지 않은 것은 맞춤한 핑계였다. 자연스레 발길이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힘차게 새해를 맞이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엔 6호차 모임의 채팅방도 만들어졌다.
올 한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모양이다. 벽두부터 아름다운 사람들과 소중한 동행을 했으니. 희망은 길에서, 현장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오른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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