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22 19:47
수정 : 2013.01.2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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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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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엔테베 기습작전도 이보다 성공적이지 않았다. 비밀유지라는 점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통상교섭본부 습격작전’은 완벽했다. 15일 오후 5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할 때까지, 아프리카를 순방중인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수뇌부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외교부 소속의 통상교섭본부가 지식경제부로 옮겨간다는 것을. 마치 자기 팔 하나가 싹둑 잘려나간다는 사실을 수술 직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셈이다.
외교부 직원들이 ‘총 맞은 것처럼’ 반응하는 건 당연하다. 미래창조과학부나 해양수산부 신설 등은 선거 과정에서 얘기가 나와 어느 정도 예견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통상교섭본부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에 신설된 지 15년이나 됐고, 그동안 숱한 다자, 양자 무역협상을 도맡아오면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외교부 직원들이 놀라는 데는 개인 또는 조직 이기주의도 작용했을 것이다. 외무공무원으로 들어왔는데 일반공무원으로 신분을 바꿔야 한다든가, 근무지가 세종시로 옮겨갈지 모른다든가 하는 실존적 불안감이 왜 없겠는가. 외교에서 경제·통상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고, 통상과 정무 분야의 경계가 점점 흐려져 현장에서 둘을 기술적으로 분리하는 게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도 이런 정도는 국익의 관점에서 보면 다 사소한 얘기다. 국가공무원이라면 외무공무원이든 일반공무원이든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게 그들의 의무다. 공관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해도 극복하지 못할 난관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식으로 조직개편을 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조직개편 과정에 과연 민주성과 투명성, 정당성은 있었느냐는 것이다.
통상교섭본부가 생긴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때다. 통상교섭본부의 필요성에 대한 본격 논의는 이보다 훨씬 앞선 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제기획원, 외무부, 재무부, 통상산업부, 농림수산부별로 각개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극도의 혼선이 빚어지자, 정부 안에서 통상 교섭 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했다. 그때도 그 기구를 어디에 두느냐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비로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인수위의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김 대통령이 고뇌 끝에 지금 방식의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하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면 통상교섭본부의 소속을 군사작전 하듯 바꾸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 그에 앞서 적어도 통상교섭본부 15년에 대한 공과를 평가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도리다. 그 조직이 외교부에 속해 있어 무엇이 잘못됐는지, 신설되는 통상산업자원부로 가면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 지금의 통상 환경에선 어떤 형태의 조직이 효율적인지를 공론에 부쳐 따져보는 게 상식이다. “기업의 통상환경 개선과 통상교섭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조치”(김용준 인수위원장)라거나 ‘외교부는 안보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게 맞다’(당선인 비서실 관계자)는 식의 외마디 설명은, 인수위가 이 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고 얼렁뚱땅 해치웠다는 의심만 키운다.
한마디로 박 당선인의 통상교섭본부 습격작전은 ‘밀실·밀통·밀봉’ 정치 행태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내가 말하면 무조건 따르라’는 권위주의 발상의 산물이다. 다행히 아직 국회 통과라는 절차가 남아 있다. 오랜만에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란 이름값을 해주길 기대한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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