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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02 19:19 수정 : 2013.04.02 19:19

김의겸 논설위원

얼마 전 아버지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병동에 실려가셨다. 대소변 등 궂은일은 어머니가 다 하시고, 자식들은 빈둥거리기만 했다. 그런데도 병원은 힘들다. 그날도 앉아 졸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 잠이 깼다. “아~니 생명이 위험한데, 입원비가 문제예요?” 레지던트가 간암 환자에게 6인실(하루 1만원) 자리가 날 때까지 2인실(하루 20만원)에 입원해 있으라고 권유하다 목소리가 커진 거다. “우리가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어요. 그럴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집으로 갈래요.” 환자의 부인은 오랜 병수발에 지쳤는지 자포자기 상태였다. “책임 못 집니다. 맘대로 하세요.” 레지던트가 획 돌아서 버린다.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환자는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도 간암 환자와 똑같은 제의를 받았다. 그러려니 하고 2인실로 올라갔다. 마침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들딸, 며느리, 사위에 손주들까지 모두 18명을 불러들였다. 바리바리 음식까지 싸오니, 콘도로 놀러 온 것 같았다. 다들 “넓으니 좋네”라고 한마디씩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계속 간호사를 찾아가 “6인실 나오면 꼭 좀 알려줘요”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자식들 부담 주기 싫으신 거다.

앞방은 하루 30만원짜리 1인실이었다. 저런 방은 누가 쓸까 궁금했다. 그런데 보호자의 행색은 남루했고, 병실 분위기는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듯했다. 입원 하루 만에 환자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린 자식들의 흐느낌이 밤새 병동을 메아리쳤다. 내내 6인실을 찾다가 죽기 전 딱 하루 1인실을 써보는구나 싶어 극락왕생을 빌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약속이 여전히 논란이다. 선택진료비, 간병비와 함께 상급병실비는 보장 항목에서 뺐기 때문이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약집 문장을 짧게 하다 보니 생긴 오해”라고 둘러댔다. 표를 얻기 위해 ‘뻥’을 쳤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일부 시민단체는 진 장관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하지만 애초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약이었는데, 액면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다고 문제 삼는 건 말꼬리 잡기처럼 비친다. 그렇다고 복지부가 공약의 취지를 살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얄미운 짓이다.

이 병원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봤다. 침대로 보면, 전체가 1600개인데 570개가 1~2인실에 있고 900개가 6인실에 있었다. 병실로 따지면, 1인실이 130개, 2인실이 220개가량인데, 6인실은 고작 150개다. 돈 되는 1~2인실은 최대한 늘리고, 값싼 6인실은 확 줄인 것이다. 전체 병상 가운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급 병상이 50% 미만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다면 더 심했을 것이다.

문득 어떤 중국집이 떠올랐다. 홀에서 파는 1만원짜리 짬뽕을 먹고 싶은데, 방에 들어가서 샥스핀을 시켜 먹으며 홀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었다. 짬뽕 손님들을 만족시키려면 방을 터서 홀을 넓혀야 한다. 병원도 1~2인실에 침대를 더 들여 6인실을 확장하면 된다. 병원 수입이 문제일 거다. 중국집은 짬뽕 값을 올리면 된다. 병원도 6인실 비용을 2만원쯤으로 올리면 어떨까 싶다. 반발이 있겠지만, 20만~30만원짜리 강매보다는 낫지 싶다. 내 돈 내고 좀 편히 있자는 사람도 있을 게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하룻밤에 한 100만원씩 받아서 모자라는 수익을 메웠으면 한다.

복지부가 어제 국민행복의료기획단 첫 회의를 열어, 이른바 3대 비급여 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부디 옛 공약을 “오해였다”고 입씻지 말고, 최대한 근접하게 지키려는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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