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16 19:02
수정 : 2013.04.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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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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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자연 공부를 하며 이런 몽상을 한 적이 있었다. 화력발전소나 수력발전소를 그리 많이 지을 게 아니라, 한번 발전한 전기로 전동기를 돌리고 이것으로 다시 발전기를 돌리는 작업을 반복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영구발전’ 또는 ‘영구기관’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게 환상이라는 걸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에 이미 해답이 나와 있었다. ‘에너지에는 운동에너지, 위치에너지, 열에너지, 전기에너지 등 많은 형태가 있는데 이들은 상호 전환될 수 있고 이때의 에너지의 총합은 일정하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영구기관은, 마치 중세 때 화학 처리를 통해 하찮은 쇳덩어리를 금으로 만들겠다는 연금술처럼 꿈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영구발전이나 연금술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경제 논리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덜 극단적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 대표 사례가 현재 우리나라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추진파가 주장하는 고속로 건설이다. 이들은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처리 공법)을 이용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여기서 나오는 플루토늄을 고속로에서 연료로 재활용하는 일을 되풀이하면 핵연료에 대한 걱정을 사실상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의 조합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의 고속 원형로 ‘몬주’의 실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고속로는 아직 기술·비용·안전 면에서 낙제점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고속 원형로 몬주를 1985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건설 비용만 해도 애초 360억엔에서 완성된 1994년 4000억엔으로 늘었다. 또 완성 다음해 성능시험 중에 사고가 발생하고, 이후 사고 은폐·조작 등이 드러나면서 제대로 가동조차 못하고 있다. 몬주 사태는 고속로가 황금알을 낳기는커녕 사람과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실현 가능성이 작고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위험하기만 한 꿈은 빨리 접는 게 상책이다. 위쪽 지방의 젊은 지도자가 내세운 ‘경제 건설-핵 무력 건설 병진론’이야말로 위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환상이 틀림없다. 그는 핵무장을 통해 방위력을 높이면서 동시에 민생도 개선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전반적 군사력 강화에 들어갈 돈을 핵무장 분야에 한정해 투입하면 그만큼 경제 건설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자원의 몫도 커진다는 논리다. 아버지 시절에 경제 개혁을 하려다 실각했던 경제 전문가를 다시 총리로 발탁한 것을 보면,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시험관 속에서만 통할 수 있는 망상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원만 생각하면 재래식 군비 강화보다 핵무장을 강화하는 게 돈이 적게 들고 그 여분을 민생에 투입한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그쪽은 외부로부터 식량·에너지 등의 유입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자원의 외부 수혈 없이는 해가 거듭할수록 점차 몸집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핵무장은 그나마 유입되던 외부 자원의 물꼬를 틀어막는 구실을 할 것이 분명하다.
영국의 역사가 액턴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말했다. 절대 무기로 불리는 핵무기는 절대 핵보유국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리비아나 이라크, 발칸반도의 예만 들 게 아니라 러시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젊은 지도자는 하루빨리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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