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5.14 19:33 수정 : 2013.05.14 22:33

김이택 논설위원

비행기 안에서 남양우유를 옆에 놓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드는 윤창중씨. 온라인에 떠도는 이 패러디 사진은 윤창중 스캔들에 가려 잠시 잊혔던 우리 사회 ‘갑을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최근 한겨레신문 기자들이 쓴 책(이춘재·김남일, <기울어진 저울>)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 최강자, 이름하여 ‘울트라 슈퍼 킹 갑’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10년 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 중수부는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예외 없이 뒤졌다. 중수부장은 ‘국민검사’, 검찰총장은 ‘국민총장’이란 찬사를 받으며 스타로 떴다.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핵심 측근을 기소해 성역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대통령보다 검찰이 셀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얼마 뒤 서울지검 특수2부는 한 기업의 배임 고발사건을 파헤쳐 전·현직 임원들을 배임죄로 기소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국민총장이 제동을 걸었다. 좀더 완벽하게 수사해야 한다며 대검 연구관들로 별도 팀을 만들어 기록 검토를 시켰다. 공소시효가 다가오는 가운데 “사표 불사”를 외치며 배수진을 친 서울지검 차장검사의 항의 끝에 결국 시효 만료 하루 전 종범인 고용사장 둘만 기소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이 슈퍼갑의 막강 위력은 이후 법원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두 고용사장 사건은 1·2심에서 유죄가 나왔으나 대법원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그것도 대법원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독자들도 알고 있는 그 기업은 물론 삼성이다.

허태학·박노빈 두 고용사장의 배임 사건과 삼성특검이 기소한 이건희 회장 사건이 모두 대법원에 있던 2009년 2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돌연 재판부 개편을 단행했다. 허 사장 등의 사건을 맡은 박시환 대법관은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올려 제대로 다루기를 원했으나 이 대법원장은 심리중이던 이 사건을 박 대법관한테서 빼앗아 다른 부로 보내버리는 초유의 무리수를 뒀다. 박 대법관은 이에 반발해 직무를 거부하고 강원도로 잠적했고, 대법원이 발칵 뒤집혔다. 결국 두 사건 주심 대법관들이 이 원장을 찾아가 전원합의체 회부를 통보하고서야 사태가 가라앉았다.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을 맡았던 이 대법원장이 자신이 심리에서 빠지는 불명예를 피하려 그랬는지, 아니면 이 회장의 유죄 판결이 나는 걸 막아보려 했던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결국 6 대 5로 무죄가 내려졌고 이 회장은 구속을 면했다. 만일 유죄가 내려졌다면 종범인 두 고용사장보다 주범의 형량이 높아야 하니 실형 선고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대통령보다 센 검찰이 ‘쫄고’, 대법원까지 휘둘리게 만드는 존재. 대한민국 ‘울트라 슈퍼 킹 갑’ 자격이 충분하다. 마지막엔 엠비가 숱한 비난을 감수하며 이 회장만 따로 원포인트 사면을 강행함으로써 그 막강한 지위를 공인해줬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재판 종결 뒤 4년 가까이 지난 지난달 초 국민총장 송광수 변호사가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맡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얼마 뒤 이번엔 이 전 대법원장마저 삼성행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주위 만류로 무산되긴 했다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부실 수사 논란을 빚었던 조준웅 삼성특검 역시 3년 전 자식을 삼성에 특채로 보냈으니, ‘엑스파일’에서 선보였던 ‘관리’ 관행은 아직도 진행형인 모양이다. 을을 다루는 채찍만이 아니라 당근까지 갖춘 울트라 슈퍼 킹 갑을 그대로 두고 작은 갑들만 들볶아 봐야 갑을 문화가 고쳐질 턱이 없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윤창중 성추행’과 박근혜 독선 인사 [한겨레캐스트 #94]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