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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8 19:17 수정 : 2013.05.28 21:45

정영무 논설위원

온라인 커뮤니티에 ‘윤창중 집 앞에 배달된 남양유업 우유’라는 제목의 패러디 사진이 올라 있다. 남양유업이 ‘욕설 영업’을 묻히게 해준 전 청와대 대변인 윤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우유를 선물한다는 뜻을 담았다. “남양유업은 윤씨에게 평생 공짜로 우유를 배달해줘야 한다”는 익살스런 댓글도 눈에 띈다. 한때 세간의 화제였던 윤씨 사건은 이재현 씨제이 회장의 비자금 사건으로 묻혔다. 대통령 방미 때 재벌 총수들에게 허리를 굽힌 윤씨가 정작 90도로 찾아서 절해야 할 분은 그 자리에 없었던 이 회장이라는 촌평이 따른다.

씨제이 이 회장 사건은 재벌 비자금의 종합판이라고 할 만하다.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으려고 그룹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에 묻어뒀다. 시세조종 등 주가조작 냄새가 물씬 나는 방법으로 그 돈을 부풀리고, 계열사 부당지원 등으로 새롭게 조성한 비자금을 한데 엎쳤다. 차명재산의 꼬리가 잡히자 모두 선대 회장한테서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둘러대며 로비로 무마하려 한 것까지 삼촌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닮았다. 재산은 물려받았지만 사업보국이라는 선대의 유지는 제대로 받들지 못한 듯하다.

씨제이 비자금에 윤씨 사건이 쑥 들어간 것까진 그렇다 쳐도, 두 사건으로 남양유업 파문이 덮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씨제이나 윤씨의 경우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고 법대로 하면 된다. 반면 남양유업은 법의 미비가 문제인 까닭이다. 을의 분노와 아우성이 봇물을 이루지만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로 남양유업에 대한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 남양유업과 피해자 간의 협상 등이 진행중이지만 소리만 요란하고 매듭은 지지부진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남양유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내릴 수 있는 처분은 잘해야 수억원대의 과징금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법체계상으로는 실효성 있는 처벌이 어려운 탓이다. 대리점 처지에선 감당할 수 없는 밀어내기지만, 본사 입장에서 보면 경영활동이라고 반박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조차도 법원에서 제동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법제도와 현실의 괴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갑의 횡포와 을의 수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냄비처럼 확 끓어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식으로 흐지부지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여야가 새달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법 등 민생법안을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결이 다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경제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시간을 두고 살펴야 한다며 갑을상생론과 속도조절론을 흘리고 있다. 문제는 턱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상생과 속도를 들먹이는 것은 이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당 지도부가 갑의 횡포 방지책으로 꼽히던 집단소송제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서 드러난다.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부당행위로 인한 피해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도 같이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게다가 을의 의지처인 공정거래위원장은 대리점 99%는 문제가 없다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재벌의 강력한 반발에 관료들의 재벌 편들기, 새누리당의 재벌 눈치 보기가 더해져 강한 반동기류가 형성됐다.

지난 1987년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학생·시민들은 6월항쟁으로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20대 청년·학생, 30대 노동자와 회사원들은 공교롭게도 자영업의 최전선에서 독재정권 못지않은 자본권력의 핍박에 시달리고 있다. 26년 전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듯이, 경제적 평등을 위한 6월항쟁에 다시 나서야 할 상황이다. 온·오프 공간에서.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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