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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5 19:09 수정 : 2013.06.26 02:12

김이택 논설위원

20년 전 소설가 김한길이 진행하던 티브이 토크쇼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가 출연했다. 1시간 대담 뒤 “박근혜씨가 청와대 안주인 노릇 하는 동안 저는 긴급조치로 감옥에 갇힌 아버지 면회 다니면서 살았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마지막 말을 빼지 않으면 방송을 내보낼 수 없다고 버텼다. 김한길이 받아들이지 않아 방송은 그대로 나갔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2005년에 쓴 <사람 vs 사람>에는 이 이야기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정신분석가 융이 말하는 ‘부성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사례로 등장한다. 극도의 자기절제와 함께 개인적·여성적 삶 대신 외부 세계의 일에 투신하는 경향을 갖는다는 유형이다. ‘외부 세계’란 바로 이런 이들의 유일한 지향점인 ‘아버지의 세계’다.

박 대통령 취임 넉 달이 지나면서 부쩍 아버지 박정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근대화’ ‘경제발전’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작정치’와 ‘권모술수’를 빼놓고는 그의 행적을 공정하게 평가하기 힘들다.

공작정치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빙자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시절 자행된 김대중 납치살해 시도, 장준하 선생 살해 의혹, 인혁당 사법살인,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민청학련이나 조작 간첩 등 최근 재심에서 잇따라 무죄가 나고 있는 고문 사건들은 박정희 시대가 짊어져야 할 업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고 사과했고 장준하 사건에 대해선 선대본부를 통해 대선 뒤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강탈 논란에 휩싸인 정수장학회에 대해서도 “공익재단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사회환원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정수장학회는 다시 ‘친박정희’ 인사들로 채워졌고 장준하 재조사는 물거품이 됐다.

정 박사는 부성 콤플렉스의 특징으로 ‘성장 후에도 현실적 부모와 신화적 부모를 분리하지 못해, 부모 문제에 관한 한 유아적 심리상태에 머문다’고 설명한다.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는 ‘신화적 원형’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최근 행보를 보면,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은 수준을 훨씬 넘어, 은연중에 청와대 시절 18년간 익힌 ‘통치 노하우’를 그대로 써먹는 느낌이다.

잇따른 인사실패 뒤에도 대변인을 시켜 두 줄짜리 사과로 끝내고, 윤창중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리에 앉아’ 말로만 사과했을 뿐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이는 모습은 없었다. 엊그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며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였다. 아버지한테 배운 제왕학 제1장 ‘군왕무치’에 따라 대통령은 항상 잘못이 없으니, 사과는 아랫사람들이 하고 욕먹을 일에는 대통령이 절대 얼굴을 내밀지 말라는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국정원을 통해 정상회담 발언록을 공개하게 한 것은 ‘공작정치’의 결정판이다. 위기 돌파를 위해선 비명에 간 전직 대통령까지 끌어내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40년 전 여름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납치살해를 시도했듯이, 정적을 분쇄하는 데는 물불 가리지 말고 과감하되, 절대 꼬리 잡혀선 안 된다는 것까지 완벽하게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먼 산 바라보기’ 작전도 철저히 수행중이다.

이전 정권이 장악해놓은 지상파 방송과 내년 3월 종편 재허가를 앞두고 코가 꿰인 조중동의 응원 속에 물타기 공작은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보기관 함부로 쓰다간 말로가 좋지 않다는 34년 전 교훈도 한번쯤 되새겨보기 바란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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