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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1 18:56 수정 : 2013.07.11 18:56

정영무 논설위원

1996년 7월17일 트랜스월드항공(TWA)의 B747기가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앞바다에서 공중폭발을 일으키고 추락한다. 케네디 공항을 이륙한 지 8분 만의 대참사였다. 애틀랜타 올림픽을 이틀 앞두고 테러 위협으로 긴장감이 높던 시점이었다.

사고 비행기는 이륙이 지연된데다 갑자기 공중에서 폭발해 테러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폭발물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바다를 샅샅이 뒤져 비행기 잔해의 95%를 수거했다. 하나하나 뜯어 붙여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하지만 B747기의 원래 모양으로 재조립한다. 치밀한 조사 끝에 마침내 기체 균열의 시작점이 중앙연료탱크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4년 뒤 위원회는 비행기 추락 원인이 유량계 계통 전선의 누전으로 인한 연료 폭발이라고 발표했다.

사고기는 이륙 전에 짐을 실은 승객 한 명이 나타나지 않아 1시간 남짓 뜨거운 계류장에서 대기했다. 냉방기에서 발생한 열이 중앙연료탱크에 고여 있던 항공유를 가연성이 높은 유증기 상태로 만들었고, 낡은 전선에서 누전이 일어나면서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공항 관계자들이 애타게 찾던 그 승객은 원래 기내에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출발 직전 확인됐다.

항공 사고는 흔적도 없고 미궁에 빠진 것도 있지만 트랜스월드항공기 사고 조사에서 보듯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과 기술 또한 집요하고 놀라울 정도다.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도 필요하지만 사고 원인을 알아야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월드항공기 사고는 그렇게 결론났지만 최근에도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미 해군의 미사일 오발설이 다시 제기됐고, 위원회는 애초의 결론을 재확인하는 일이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B777기 사고는 기체 결함, 조종사 과실, 공항 관제 문제 가운데 한 가지 또는 여러 조합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항 내 사고이고 블랙박스도 멀쩡해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일부 외신에서 사고의 원인으로 한국적 기업문화를 지목해 논란이 일었다. 섣부른 예단에 지나지 않지만, 만에 하나라도 상황을 악화시킨 요소가 되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는 있다. 항공 사고 과정에서 조종사와 관제탑 사이의 교신뿐만 아니라 조종사 간의 대화 같은 의사소통의 문제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실제로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건은 악천후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장이 착륙 도중 고도를 잘못 파악했는데도 부기장이 완곡어법을 써서 의견 전달에 실패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혔다. 미국의 외교 전문 매체 <포린 폴리시>는 매사추세츠공대 아널드 바넷 교수의 ‘국가별 항공안전 차이’라는 논문을 인용해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비행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문화에서는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직급이 낮은 승무원들이 상급자의 결정에 도전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을 꺼린다는 분석이다. 물론 조종사들은 따로 고도의 훈련을 받지만, 이들이 속해 있는 한국의 기업문화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렵고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권위주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고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여승무원의 유니폼은 부자연스럽고 위계적인 기업문화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아시아나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이유로 치마 유니폼을 25년간 고수하다가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고 바지 근무복을 도입했다. 하지만 바지를 입은 여승무원은 없다. 바지가 치마에 비해 디자인과 재질이 떨어지고 바지를 신청한 승무원에게 주의를 줬다고 한다. 바지를 허용한다면서 담장 너머 빨랫줄에 널어 놓았다.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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