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17 18:48
수정 : 2013.10.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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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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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교·안보 상황이 팍팍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최적의 좌표를 설정하는 문제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그 최전선에 있는 뜨거운 현안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엠디) 참여 여부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0일 한-미 안보협의회의 참석차 서울로 오면서 “전시작전권 전환 결정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사일방어”라고 꼭 집어서 말했다. 누가 봐도 박근혜 정부가 매달리고 있는 전작권 환수 재연기 요구를 지렛대로 삼아 우리의 엠디 참여를 압박하는 발언이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이튿날 박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 능력을 조기에 확보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력화하겠다고 화답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1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층 방어를 위한 수단을 연구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미국 주도의 엠디 참여를 시사했다.
이제까지 엠디에 관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엠디와 ‘한국형 엠디’는 전혀 별개이고, 미국 주도의 엠디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형 엠디는 한반도를 대상으로 한 저고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고, 미국 엠디는 중·고고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으로 차원이 다르다, 정보 공유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엠디 참여는 아니다’라는 게 그간의 설명이었다. 김 장관도 자신의 국감 발언이 파문을 불러일으키자, 16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분명히 미국 엠디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불을 끄고 나섰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그의 오락가락 발언을 포함한 한-미 군당국자의 최근 언동은 한국형 엠디와 미국 엠디가 전혀 별개의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게 한다. 양국은 2일 열린 연례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 “미사일 위협에 대한 탐지·방어·교란 및 파괴의 포괄적 동맹의 미사일 대응전력을 지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고, 두 나라 사이의 미사일방어시스템의 상호운용성을 증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보다 더 명확한 미국 엠디 참여 선언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헤이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엠디와 미국의 엠디가 똑같을 필요가 없다. 다만 상호운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교묘한 답변을 했지만, 이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그 방점이 상호운용성에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상호운용성이라는 말은 서로 한 체계 안에 연동해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용어다. 결국 상호운용성이란 단어와 박 대통령 및 김 장관의 발언을 맥락적으로 연결해 보면, ‘미국이 참여를 요구했고 우리가 수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결론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국방 당국자들은 여전히 ‘한국형 엠디 따로, 미국 엠디 따로’인 것처럼 말한다. 미국의 엠디 참여 압력이 시작된 것은 수년 전부터이고, 그것이 처음 문서로 표현된 게 2012년 6월 한-미 외교·국방(2+2)장관회의의 공동성명이다. 이런 움직임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슬금슬금 수용해왔으면서도 군인들은 한국형을 방패 삼아 너스레를 떨고 있다. 그들은 ‘기발한 조어’로 반대 여론도 무마하고 엠디 참여도 매끄럽게 기정사실화했다고 자찬할지 모른다. 일종의 혹세무민이다.
엠디는 앞으로 수십년간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 사안이다. 군사적 효용, 막대한 비용,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참여에 대한 위험이 매우 크다. 이런 문제를 문민통제에서 벗어난 일부 군인 및 그 주변 세력의 독단에 맡겨 둬선 안 된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유신독재를 분식했던 용어였듯이, 한국형 엠디는 미국 주도의 엠디 참여를 눈속임하려는 기만적 조어일 뿐이다.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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