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정감사에는 시대를 거꾸로 사는 엽기 증인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스타급 증인은 역시 윤석열 검사다. 그가 폭로한 내용은 단순한 가십거리 수준을 넘는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굳이 ‘위법’이란 표현을 쓴 데는 뼈가 들어 있다.
국감장에 배석한 검사장들은 검찰청법에 있는 ‘이의제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윤 검사를 비난하는 여당 의원 질문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같은 생각입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거짓말에 가깝다. 법대로 실행할 하위규칙을 만들지 않아 한 번도 제대로 사용된 적 없는 ‘불임조항’을 끄집어냈으니, 사실상 국민들을 속인 거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건강한 조직이라면 그래도 한두 명쯤은 “실행규칙이 없으니 윤 검사 행동도 이해는 간다”는 정도의 말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공개적인 자리에서 “조폭만도 못하다”는 말까지 듣고도 반박 논평 하나 내지 못했으니 역시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윤 검사는 이 자리에서 “명백한 ‘위법’적 지시에 대해서는 따라선 안 된다”는 취지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국정원 요원들의 트위터 글 수사 결과를 들고 보고하러 간 그에게 조 지검장이 “내가 사표 낸 다음에나 수사하라”며 격노했다면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니 ‘위법’임에 틀림없다.
이 대목에서 참고할 게 있다. 대검 국감에서도 거론됐듯이 대법원은 2007년 신승남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직권남용 등 사건에서 “내사 진행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도록 하라는 언급만으로도 내사 담당자로서는 추가적인 내사 진행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내사 중단 지시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수사중인 검사에게 ‘외부로 공개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 것만으로도 직권남용인데, “문재인 대북관은 간첩 수준” 등 노골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증거물을 앞에 놓고도 “사표 낸 다음에나 수사하라”고 했다면 100% 직권남용 아닌가.
조 지검장 지시대로 트위터 글들을 덮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윤 검사가 ‘외압’의 주체로 언급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조 지검장 등 검찰 간부와 청와대 고위 인사들까지 줄줄이 교도소 담장 위를 오락가락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윤 검사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보고 누락’을 이유로 감찰을 하고 있으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대선 개입의 진상을 은폐·축소하는 건 명백한 2차 범죄다. 취임사부터 ‘전사’로서 몸을 던지겠다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검찰 수사를 철저하게 방해하고 있다. 직원 배치표 제출 거부는 물론 청문회와 법정에서 직원과 간부들이 제대로 증언을 하지 않는 것도 그의 의지와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이 엊그제 트위터 글에 대한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함으로써 선거법의 유죄 가능성도 커졌다. 대통령을 호위하려던 은폐·조작 시도가 헛수고가 되는 건 물론이고 감춰졌던 2차 범죄도 노출될 수 있다.
국정원의 조직적인 위증과 증거인멸이 드러나면 위증교사, 증거인멸, 직권남용 등 해당되는 범죄가 한둘이 아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을 수사 중인 국방부도 위험하다. 의혹을 받는 18명 중 겨우 7명만 수사를 하고 있다. 게다가 법무관들에겐 법률 검토만 맡겼다니 장막 뒤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뻔하지 않은가.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보고를 받았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형사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군이든 국정원이든 그들이 쓴 글은 어딘가에 남아 있고,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진실은 힘이 세다. 검찰총장의 내밀한 전화통화도 특별검사가 조사하면 다 나왔다. 대통령까지 “(필요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니 이제라도 정신들 차리길.
김이택 논설위원rikim@hani.co.kr변화무쌍! 국정원 사건과 ‘입’들 [한겨레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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