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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3 19:08 수정 : 2013.12.04 08:43

백기철 논설위원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군 장교를 죽인 뒤 한동안 은거했던 충남 공주 마곡사를 얼마 전 찾았다. 백범이 머리를 깎았다는 삭발터는 조촐하면서도 호젓했다. 조그마한 나무 난간과 안내판이 전부였지만 백범의 민족혼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백범은 삭발 당시를 <백범일지>에 이렇게 썼다. “사제 호덕삼이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툭 떨어졌다.” 삭발 장면을 묘사한 백범의 소탈함이 신선하다.

백범의 삭발터가 조촐하게나마 기념되는 게 반가운 것은 현대사에서 기릴 인물이 없는 탓이다. 사상과 이념, 지역과 정파를 떠나 민족의 지도자로 우러러볼 만한 이가 참 드물다. 민족의 비애다. 현대사의 굽이굽이에서 차이고 밟혀 피투성이가 된 백성들의 아픔을 보듬고 달래줄 마음속의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승만을 한마음으로 추앙할 수 있나. 반신반인이라는 칭송까지 듣는 박정희를 그리할 수 있나. 김대중, 노무현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잘못투성이라는 게 아니다. 민족과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데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이승만만 해도 그렇다. 젊은 시절 이승만은 시대를 한참 앞서가는 선각자였지만 지도자로서 보인 행태는 실망스러웠다. 24살 때 왕정 폐지를 꾀했다는 이유로 7년간 옥고를 치른 이승만은 민주주의의 진취성, 외교와 통상을 통한 자강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일찌감치 깨달았다. 해방 정국에서 남한 단정을 고집한 그의 민족분열적 행동은 어찌 보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혜안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대한민국 국가수반으로서 이승만은 노추의 연속이었다. 내각제로 성안된 제헌헌법을 하루아침에 대통령제로 뜯어고치더니 이후 사사오입 개헌 등 헌정 파괴를 밥 먹듯 했다. 국부로 추앙하기에는 너무 독선적이고 오만한 정치를 했다.

역사에서 공과를 따지는 것과 국민 마음속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다르다. 이승만을 아무리 역사 교과서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도배해도 그가 온전한 민족의 지도자가 아닌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승만이 권력을 모질게 좇은 영악한 마키아벨리스트라면 김구는 비록 둔탁하지만 삶 자체가 민족의 역사에 녹아든 마음속의 지도자다.

박정희가 온전한 지도자가 아닌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생가에 5m 높이의 황금빛 동상을 세우고, 탄신제 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해도 그는 국민을 한데 아우르는 마음속 지도자는 아니다. 황금빛 동상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삭발터의 조그만 안내판이 더 정겹고 눈물난다.

현실정치에서 온전한 지도자를 찾는 게 연목구어, 즉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 식의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남북 분단으로 애초부터 제대로 된 지도자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남북 대립은 양쪽 모두 반쪽 지도자들을 만들어냈다.

우리 시대는 지도자를 키우지 못하는 시대다. 지도자가 될 성싶으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마구 할퀴고 붙잡아 넘어뜨린다. 그 와중에 최고의 싸움꾼만이 지도자인 양 행세한다. 지도자 반열에 오른 인물치고 말년까지 제대로 올곧게 남은 이도 별로 없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종내에는 온갖 인연에 얽혀들고 만다. 제대로 된 지도자 없이 나라를 이 정도로 일군 우리 국민이 차라리 대단하다.

현실 세계의 이런 비루함 탓에 일찍 흉탄에 스러진 백범이 더 그리운가 보다. 눈앞의 정치가 정말 정나미 떨어지고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보니 지도자 없는 민족의 비애가 새삼스레 느껴진다. 정치가 없는 정치, 국민 마음을 다독이지 못하는 정치를 보며 푸념이 절로 나오는 걸 어쩔 수 없다.

백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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