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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5 19:28 수정 : 2013.12.05 19:28

오태규 논설위원

“신뢰외교(Trustpolitik)가 뭡니까?”

“아, 그거 ‘나는 상대를 믿지 않는다’(I do not trust you)라는 정책인 것 같습니다.”

최근 서울의 한 외국 특파원한테 들은 얘기다. 서울을 방문한 영미계 국가의 한 언론사 사장이 자사 특파원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신뢰외교에 대해 설명을 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 특파원이 대뜸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박 정권이 대외정책의 대표 상품으로 내놓은 신뢰외교가 불신받고 있다. 아니, 조롱받고 있다. 밖에서뿐만 아니다. 안에서도 그렇다.

대북 민간지원 단체 모임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는 11월21일 성명을 통해 대북정책 책임자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문책을 요구했다.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북민협의 대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다. 북민협이 말하는 류 장관 문책 이유는 간명하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계속하겠다’는 원칙을 계속 천명해 왔는데, 류 장관이 이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인도지원 규모는 ‘비핵·개방·3000’과 ‘5·24 조치’ 등 대북 강경정책을 취했던 이명박 정부 마지막 1년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박 정권에서 대북정책이 수립·집행되는 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북민협이 정말 비판하고 싶은 인물이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 정부의 신뢰외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서울 프로세스)이라는 두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반성이 출발점이다. 온건·강경의 두 정책이 모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인식 아래, 그에 대한 변증법적 통일로서 ‘신뢰 형성을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를 들고나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치 상황과 무관한 인도적 지원’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입구이자 핵심 사항이었다.

하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어느 사이엔가 나부터 ‘신뢰를 만들어 가겠다’는 정책에서 상대에게 ‘신뢰를 보여 달라’는 것으로 변질하였다. 남북 상호 필요에 따라 복원된 개성공단 말고는 전혀 진척이 없는,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보다 후퇴한 남북관계는 ‘전도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역내 국가 간 경제적 상호 의존과 협력은 커지는데도 정치·안보 분야의 갈등과 대립은 지속되는 ‘아시아 패러독스’를 풀기 위해 환경·에너지 등 연성 사안부터 논의를 시작하자고 박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도 한반도 프로세스와 같은 덫에 갇혀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론 이 구상의 핵심 참여국이 돼야 할 일본에서 꽉 막혀 있다. 박 정부가 북한에 신뢰를 먼저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일본엔 ‘역사 직시’를 선결 과제로 요구하며 다른 문까지 모두 닫아걸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이름의 외교정책도 자기 힘을 과신하고 상대와 현실을 무시해선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그럴듯한 구호만 앞세운 채,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동의를 끌어낼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하면 힘을 얻기 힘들다. 내용이 없는 원칙은 공허하다. 이것이 지금 신뢰외교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신뢰외교가 불신과 조롱, 비판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상대가 혹할 만한 제품을 보여주는 게 우선이다. 그러지 않고는 ‘신뢰외교’로 쓰고 ‘불신외교’로 읽는 상황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페이스북 @ohtak5

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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