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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10 19:02 수정 : 2013.12.10 19:02

정영무 논설위원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10일 발족했다.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상근자를 두고 삼성의 노동인권 실태를 지켜보겠다는 지킴이는 삼성에 새로운 도전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승승장구한 삼성은 후진적 지배구조와 노동관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삼성은 자신의 약한 고리에 대한 외부의 숱한 공세와 내부의 파열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파도를 잘 헤쳐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원이 다르다. 삼성은 진행파, 심해파, 삼각파 등 온갖 파도에 대처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겪어보지 못한 바람이 일고 있다. 바람은 통제하지 못한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회사에 다니다가 지난 10월31일 생을 내려놓은 최종범씨의 죽음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직업병 피해와 또 다르다. 최씨의 죽음은 시민들에게 삼성의 반노동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이웃집의 불로 여기게끔 하는 계기가 됐다. 반도체 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노사문제에서 일상적으로 수리기사를 접하는 소비자와 시민의 관심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최씨의 죽음은 또 삼성과 협력업체라는 법인 대 법인의 관계가 아니라 삼성이란 거대 조직과 무력한 한 노동자의 맞닥뜨림이라는 점에서 함축적인 의미가 깊다.

“너무 힘들었다. 배고파 못살았다”는 최씨는 고객이 원하면 자정까지도 일해야 했고 휴대전화는 상담을 위해 24시간 켜놓았다고 한다. 서비스 품질 12년 연속 1위의 이면에는 폴리스에서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한 오이코스의 고된 몸부림이 있었다. 그럼에도 건당 수수료로 지급받는 급여체계여서 비수기엔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고객만족을 위한 해피콜은 초기엔 만족·보통·불만족 3단계였다가 10단계로 진화했다고 한다. 평가가 세밀해질수록 수리기사의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삼성전자서비스-협력사 사장-협력기사 순으로 추궁은 심해졌다. 마름을 통한 봉건적 수탈구조와 다를 바 없다. 지주는 대리인인 마름을 닦달하고, 마름은 소작농을 선정하거나 소작료를 매기는 권한을 이용해 쥐어짜기 일쑤였다.

삼성은 사과하고 노조활동을 방해 말라는 최씨 유족의 요구에, 안타깝지만 협력사의 일이어서 손쓸 도리가 없다는 사무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최씨의 죽음은 노조 활동을 막으라는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의 지시나 그에 따른 불이익과 무관하지 않은데도 협력사를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있다. 대신 상생협의회를 구성해 수리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봉건적 구조를 뜯어고치거나 견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시혜적 조처로는 한계가 뻔할 수밖에 없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 방침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삼성은 노조가 필요없을 정도로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노조는 갈등과 대립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감시와 탄압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의 불만과 노동조합 결성 의지를 반영한다. 반도체 공장에서 입사 2년 만에 백혈병이 발병해 스물셋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의 아버지는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내 딸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고민이나 고충도 클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익숙한 관리와 통제 방식으로 대처해가기 어려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삼성 사장단 앞에서 강연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새로운 리더십은 열린 공간으로 나와서 사회와 소통할 것을 제언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다음 삼성을 맡겠다면 소통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과 삼성이 곧 교섭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반갑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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