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2.11 18:43 수정 : 2014.02.11 18:43

오태규 논설위원

‘일본과 중국 둘 중 누가 동지이고 적인지 분명히 밝혀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방문 이후 역사인식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는 일본의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대사가 지난달 29일 공개 석상에서 미국을 향해 던진 도발적 발언이다.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린 일본의 절박함과, 친구와 적을 철저하게 구분해 대하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 함께 묻어 있는 말이지만, 나는 후자 쪽에 더욱 관심이 간다. 미국을 향한 일본의 양자택일 요구가 사실은 ‘친중국 행보’를 취하고 있는 듯한 박근혜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게 국제정치판이라곤 하나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공개적으로 적인지 동지인지 밝히라고 요구하는 건 무도한 일이다. 그런 언술에는 자기 쪽에 줄을 서지 않으면 보복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이 내포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발언 뒤에 참화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2001년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한 정책이 바로 편가르기와 보복의 전형이다. 그는 2001년 9월20일, 9·11 테러사건 이후 첫 의회 연설에서 “이제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결단해야 한다. 우리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테러리스트의 편에 설 것인가. 앞으로 테러리스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거나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는 미국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라고 선언한 뒤 무자비한 보복 행동에 나섰다. 이듬해 국정연설에서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지목한 뒤 차례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침공하며 공포와 피바람을 몰고왔다.

국제정치에서 편가르기와 보복은 성격상 약자가 강자에게 구사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사에 대사가 미국에 적인지 동지인지 밝히라고 요구한 것은 얼토당토않은 짓이다. 하지만 미국에 묻는 형식을 가장하면서 다른 나라에 신호를 보내겠다는 의도가 담긴 언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그의 발언이 박 정권에 대한 아베 정권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고, 한국의 중국 편향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 처지에서 보면, 갈등의 대부분이 자신이 자초한 것일지라도 중-일 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언제 무력충돌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박 정부가 일방적으로 중국 편을 들고 있다고 받아들일 소지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수정주의 성향의 교과서 기술 지침, 일본군 군대위안부, 하얼빈의 안중근기념관 설립 등 역사인식을 둘러싼 사안마다 한-중 두 나라가 사전에 입을 맞춘 듯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미국의 버지니아주에서 동해 병기법이 통과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초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경전도 모두 ‘반일·친중’의 시각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박 정부의 대외정책이 정말 반일·친중 노선이냐는 점이다. 그렇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서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이라면 박 정권은 시급하게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 세계에 적과 동지 간의 투쟁만 있는 건 아니다. 공존을 위한 노력도 있다. 힘이 약한 나라일수록 적과 동지의 이분법 구도에 휘말리는 건 재앙이다.

박 정권은 지금의 대외정책이 의도와 무관하게 적과 동지의 구도를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활로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 아니라 공존에서 찾아야 하기에.

오태규 논설위원

페이스북 @ohtak5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