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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2 18:27 수정 : 2014.09.02 18:27

이경 논설위원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은 다 디플레이션 파이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인플레이션 파이팅을 하는 것이 수년째 진행되고 있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물가안정 목표를 2.5~3.5%의 범위로 주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3년째 (목표의) 하한 범위 아래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이 되면 디플레이션이 심화된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며칠 전 한 포럼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최 부총리의 사실 인식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최 부총리 얘기대로 물가안정 목표를 3년째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올해 들어 1.4% 올랐고, 지난해 상승률은 1.3%였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일컫는 디플레이션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정책 당국자가 사실을 잘못 인식하면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최 부총리 발언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그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다음날 “우리 경제를 그런(=디플레이션) 쪽으로 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운용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 말이다”라고 해명했다. 발언의 메시지가 하루 새 확 바뀐 것이다.

하지만 오류에도 불구하고 해명 내용은 공감할 만하다. 현재 디플레이션은 아니어도 물가상승률이 매우 낮아 위험신호가 켜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가안정 달성이란 책무를 진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내린 뒤 “지금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지만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디플레이션 위험은 일본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번 덫에 빠지면 불황이나 침체를 겪기 쉬운 대신, 벗어나기는 무척 어렵다. 오죽하면 통화주의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이 ‘헬리콥터에서 돈 뿌리기’라는 극단적 해법까지 언급했을까 싶다. 그렇다면 최 부총리는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화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펴고 있을까? 그는 현재 자신의 주도 아래 여러 정책을 추진하거나 추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을 차단하려면 임금 상승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한데도, 이렇다 할 대책이나 관심 표명이 없다. 가계소득 증대세제를 통해 임금 상승 등을 이끌어내겠다고 했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설령 임금이 늘어나더라도 일부 대기업 직원들만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임금 상황은 어떤가. 기재부 자료를 갖고 실질 임금 상승률을 계산해보니, 실질 국내총생산이나 국민총소득 증가율을 크게 밑돌고 있다. 2004~2013년 10년간 상용직 임금은 한해 평균 1.6% 올랐다. 반면,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3.9%와 3.3%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로 범위를 좁히면 격차는 더 커진다. 총생산과 총소득이 3.2%와 3.0% 오르는 동안 임금 상승률은 0.5%에 그쳤다. 저임금 또는 임금 없는 성장이란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으니, 임금이 가계소득의 75%나 되는 현실에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최 부총리가 임금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전반적인 임금 수준 증대는 물론, 최저임금 현실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 등 할 일이 많다. 여기서 성과를 내면 디플레이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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