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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은퇴를 선언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전남 강진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토담집(흙으로 지은 집)에 둥지를 틀었다. 7·30 재·보궐선거 패배를 뒤로하고 21년간의 정치인생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은 손 고문은 부인과 함께 이 토담집으로 내려와 칩거 중이다. 사진은 토담집에서 부인과 함께 지내는 손 고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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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전남 강진의 백련사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지 않고 온화했다. 산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추수 직전의 황금들녘과 그 너머로 구강 포구를 고즈넉이 품은 남해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절경이다. 서기 839년 무염선사가 이곳을 천년고찰 백련사의 터로 점찍은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남도 끝자락의 산속에 위치한 이 작은 말사가 요즘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 7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이곳에 은둔하며 책을 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2주 전 주말엔 부산에서 온 지지자 수십명이 손 전 대표를 만나겠다며 산속 곳곳을 뒤지고 다니다 끝내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갔다고 사찰 관계자가 전했다. 그 며칠 뒤엔 한밤중에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백련사를 찾았지만 역시 손 전 대표를 만나지는 못했다. 백련사에서도 가파른 산길을 20분 정도 더 올라가면 나오는 흙집에 손 전 대표는 아내와 단둘이 산다. 스님들이 정진수행할 때 머물던 ‘토굴’(불가에선 스님의 수행처를 이렇게 낮춰 부른다)이라, 부엌도 없는 5평 남짓한 방 한 칸과 툇마루가 전부다. 점심은 백련사에 내려가 공양을 하고, 아침과 저녁은 고구마나 밤 등으로 때운다고 했다. 손 전 대표가 여길 은둔처로 잡은 이유를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매일 아내와 함께 다산초당까지 난 산길을 걷는다. 19세기 초 천주교를 받아들인 죄로 강진에 귀양 온 다산 정약용은 백련사를 오가며 큰스님 혜장선사와 교분을 나눴다. 그래서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산길을 남도유배길이라 부른다. 매일 이 길을 걸으며 손 전 대표는 스스로를 유배자로 생각하는 듯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그의 얼굴이다. 온갖 상념에서 해방되어선지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 2007년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한 뒤 2년간 춘천 부근 외딴집에 기거할 때 그의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였다. 이번엔 말끔하다. 왜 수염을 기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4가지 규율을 지켰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몸을 단정히 하며, 말을 삼가고,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나도 그 가르침을 따르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계은퇴라는 뜻밖의 선택을 한 이유를 물었다. “이번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데 투표 1주일 전쯤, 선거에서 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질 수도 있을 거 같아. 지면 깨끗하게 은퇴하자’고 얘기했다. 21년 정치했는데, 더 미련 두면 뭐하나. 물러날 때 깨끗하게 물러나야지. 그래야 또다른 사람이 앞으로 나가지….” 그의 선택은 미국 민주당의 앨 고어 전 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플로리다 재검표 끝에 아깝게 조지 부시에게 패했던 앨 고어는, 2004년 선거에 다시 나서라는 지지자들의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거에 다시 나설 투지와 포부를 갖고 있지만, 그렇게 하는 건 옳지 않다. 내가 부시 대통령과 다시 맞붙으면 선거 초점은 미래가 아닌 과거로 되돌려질 게 분명하다. 모든 선거캠페인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고어는 조용히 뒤에서 민주당을 돕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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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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