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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0 18:50 수정 : 2015.01.20 18:50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에 중의성을 부여한다. 사실과 논리의 힘이 폭력을 이길 수 있다는 본래 의미와 함께, 어떤 표현 행위는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비수보다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경고를 품는 말이 됐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조롱하는 펜이 선량한 무슬림들의 심장에 꽂히는 아이러니가 안타깝다. 테러에 대한 분노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다.

1985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한 영화가 상영금지됐다. 하느님을 병약한 노인으로, 예수를 지적장애인으로, 성모 마리아를 음탕한 여인으로 묘사한 영화였다.(더 세세한 내용은 생략하는 게 옳겠다.) 제작자 쪽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유럽연합의 최고 법원인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재판소는 판결(1994년)에서 종교에 대한 모독은 허용된다고 밝혔다.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자신의 종교를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표현까지도 관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정도’가 문제됐다. 재판소는 “모독이 극단적일 때는 그 종교를 믿는 이들의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며 “불필요하게 모욕적이어서 사회적 토론이라고 볼 수 없는 표현은 제한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풍자가 이 영화에 비견할 만한지에 대한 판단은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두 가지 차별점이 보인다. 첫째, 영화가 기독교의 신조를 직접 공격했다면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보다는 정치적 토론의 영역에 가깝다. 이 영역에서는 유럽인권재판소의 지적처럼 “모욕적이고 충격적이고 혼란을 일으키는” 표현까지도 허용돼야만 민주주의가 질식하지 않는다. 둘째, 인스브루크에서는 주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지만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이 소수라는 점이다. 소외되고 억눌린 집단은 모욕적인 공격을 당했을 때 존엄성과 정체성의 상처가 더 깊고, 사회적 토론의 장에서 맞대응할 능력도 떨어진다. 그만큼 더 보호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상반된 두 요소로 인해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에 대한 평가는 더 어려운 듯하다.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칼과 방패를 든 상대방을 찌를 때 펜은 정당한 ‘무기’가 되지만 무방비 상태의 상대방을 찌를 때 펜은 ‘흉기’일 뿐이다. 어느 순간 펜이 동시에 무기이자 흉기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펜을 거둬들이겠다. 무기로서의 펜은 언제든 벼려서 다시 쓸 수 있지만, 흉기가 된 펜은 쓰는 순간 누군가의 심장에 박혀버리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하면서도 종교·인종·성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헤이트 스피치)은 강하게 규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2004년 스웨덴의 한 고등학교에 동성애를 “성적인 일탈 성향” 등으로 비난하는 전단지를 뿌린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자 유럽인권재판소에 구제를 요청했다. 이들은 학교교육에서 동성애를 객관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데 대해 사회적 토론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소는 “그런 목적이라면 모욕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처벌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2012년)

박용현 논설위원
이런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표현의 자유는 정확히 전도돼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해산당하고 기소당하고 출국금지당한다. 반면 성적 소수자에 대한 극언과 지역차별의 망발이 난무해도 제재할 생각조차 못한다. 비탄에 빠진 세월호 유족들에게는 말의 비수들이 숨쉴 틈 없이 내리꽂힌다. 이렇게 ‘흉기’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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