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 대열 옆에 서서 얼마 전까지 내가 있던 대치선 너머 시위대를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이십 수년 전 기자로서 처음 시위 취재를 나갔을 때 이야기다. 구호를 외치며 내지르던 손에는 취재수첩이 들렸지만, 그보다는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 더 묵직했다. 여기 있으면 날아오는 최루탄을 맞지는 않겠다, 달려드는 사복경찰 체포조에게 쫓기는 공포는 겪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은근히 설레기까지 했다. 시위현장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닌 것도 공인된 구경꾼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제3자가 그럴진대 칼을 쥔 쪽이라면 오죽할까. 승자 선호는 일반적 욕구라고 한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쪽에 서고 싶어하는 유권자 심리가 대표적이다. 후보자들이 승자를 연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출구조사가 종종 틀리는 것도 그래서다. 승자 편에 서면 심리적 만족감이나 안정감 이상의 대가도 있을 수 있다. 권력의 일부를 휘두르는 ‘완장’이나, 우리 편이니 보호한다는 ‘면죄부’다. 그 힘이 달콤한 만큼, 잃었을 때의 상실감도 크다. 홍준표 경남지사나 이완구 전 총리가 지금 그런 심경이겠다. 비주류를 자처해왔지만 사실 홍 지사는 시종 칼을 쥔 쪽이었다. 검사 때는 물론 정치인 시절에도 그는 저격수든 뭐든 대체로 공격을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표현대로 이제 ‘팻감’이 되어 칼날을 받는 처지에 몰렸다. 처지가 바뀌니 발도 엉킨다. 공천헌금을 거론해 ‘혼자 죽진 않겠다’는 결기를 내뿜지만, 그래 봤자 승자 편에서 내쳐졌다는 사실만 부각된다. 사정 정국을 선언했던 이 전 총리가 두 달 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나온 것도 허망한 ‘완장’의 운명이다. 그는 숱한 거짓말로 낙마해 이미 상처투성이다. 그를 향한 비난과 조롱의 십자포화를 보면 이제는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는 듯하다. 두 사람과 달리 아직 승자의 그늘에 숨은 사람들이 있다. ‘성완종 리스트’ 8명 가운데 6명에게는 아직 검찰의 칼날도, 언론의 사나운 추격도 없다. 그중 3명은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서 돈을 만지던 핵심이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억원을 줬다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조직총괄본부장이었고, 3억원의 유정복 인천시장은 직능총괄본부장이었다. 돈이 있어야 움직이는 게 선거 조직이고, 온갖 직능별로 이런저런 임명장을 뿌리고 쉼없는 행사로 돈을 쓰는 게 그동안의 선거다. 2억원이라는 서병수 부산시장은 그런 돈을 관리하는 당 사무총장이자 당무조정본부장이었다. 그들을 주축으로 했던 선거에서 이긴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지 며칠 뒤인 4월15일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의 대선자금을 수사하라는 말이다. 4월28일에는 2005년, 2007년 성 전 회장 사면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증언과 단서가 있는 새누리당 대선자금 의혹과 달리, 대통령이 말한 사안들은 돈이 오간 흔적이 없다.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것도 있다. 물타기를 넘어, 제한된 수사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라고 강요하는 꼴이 된다. 그런 수사 없이는 자기 사람들을 손대지 말라는 말로도 들린다. 이쯤 되면 부당한 수사지침 정도가 아니라 범죄 용의자를 보호하고 도피시키려는 수사 방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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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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